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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Dec 27. 2023

독립은 달다

따로 또 같이



작은 녀석을 서울로 보내고 비어 있는 방에 새 이불을 깔고 펼쳐 나의 보금자리로 만들었다.  그토록 원하던 분리 독립이다.  오롯이 혼자 즐기고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크지 않아서 좋다. 책 보고 끄적거릴 수 있는 조그마한 책상 하나와 의자에서 그대로 몸을 넘기면 덥석 받아 누일 수 있는 침대 하나가 전부다.  작은 것이어서 소박하다는 말 실감한다. 그리 개운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아늑하다.  새로 깐 이불이 지친 하루를 어루만져 주듯 포근하다.  아들 생각은 잠시 잊었다. 그도 이곳에서 지친 하루를 녹였으리라.


녀석이 정말로 독립을 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 해 다행스럽게도 원하는 대기업에 취직해 바로 기숙사로 들어갔다. 기숙사에서 일 년을 지내다가 드디어 혼자 살게 된 아들.  좋단다, 좀 더 일찍 독립할 걸 이리 좋은 걸. 기숙사에서의 생활은 아마 불편했지 싶다.  혼자가 아니라 둘만 이었어도 동료와 함께 하는 공동생활이 편하진 않았으리라.  그래도 내겐 불평이 없었다.  불평을 해도 내가 어찌해 주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그것도 혼자 감내해야 할 일이기에 그냥저냥 넘어갔으리라.  엄마인 나는 그게 돈 굳는 거라고,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그것들이  안전하다 여겼기에 감수하길 바랐다. 시간이 당겨졌을 뿐이다. 그의 기분도 이러했으리라.  




 그 녀석은  초등을 졸업할 무렵이 되면서 자기 방을 갖고 싶어 했다.  공부방으로  방 하나를 쓰고 또 잠자는 방  하나를 형이랑 같이 쓰면서 오히려 형보다 자기가 먼저 독립 아닌 독립을 외쳤던 녀석이다.  그래, 그럴 때도 되었지 하면서 둘째라 조금 작은 방을 줬었다.  혼자 쓰기 조금 크다고 생각해 침대 하나에 책상 하나, 옷장 하나 그게 전부여도 혼자 쓰기 넉넉했다. 그때는. 그 무렵 독립 기념 겸 졸업 기념으로 원목으로 직접 만든 제법 근사한 책상을 선물이랍시고 제게 줬다.  이제는 그 책상이 나의 둘도 없는 반려가 되어 있다.


퇴근 후 화장을 지우고  나는 나의 책방으로 간다. 젤 먼저 향하는 곳이 되었다.  동선에 군더더기 없이 바로 앉아도 된다. 오히려 넓지 않아서 시선도 집중되고 아늑하니 심신이 편하다. 그래서 청소가 부담스러워 집도 큰 게 싫어지는 건가? 생각하니 더 오래도록 이 평화와 여유를 누리고 싶다.




서울로 간 아들의 독립된 공간을 아직 구경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안 봐도 뻔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보고 싶다. 잔소리가 나오겠지, 그래서 이 녀석이 나를 부르지 않는 거겠지.  아닐 거야, 바빠서 아직 초대할 수 없었을 거야.  혼자만의 상념으로 그 녀석과의 대면을 꿈꿔봤다.


그러다 이사할 무렵 엄마, 침대는 어느 크기가 적당해요?  물어주는 녀석이 고마웠다. 언제부턴가 스스로 돈을 벌게 되면서 안부 전화도 없고 부탁도 없고 바라는 것 또한 없다. 일부러 이러이러한  일은 부탁도 하고 안부 전화도 하렴 넌지시 말해 놓지만 들을 때뿐이다.  돌아서면 잊는다. 모르지, 들을 때부터 귀찮아했는지도. 그러다 한 번 내게 물어오면 그게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아이들은 이제 완전히 독립된 개체로 살아간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서운할 일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저들이 나를 서운하게 한 것도 아닌데 나 혼자 엮고 풀고 매듭짓다 보니 아무 말 없는 아이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나 보다. '내려놓는다'라는 말, 말이 쉽지 행동은 정말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옆 친구가 자기 자식에게 서운하다 푸념하면 아이들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하다가도 그게 만약 나의 일이라면 어땠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자식은 그보다 더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막연한 섭섭함이 중년을 힘들게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한 아이들은 저들대로 잘 살아낼 것이리라. 나도 아이들의 서운함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몸도 독립, 마음도 독립. 완전한 독립을 위한 준비를 다져야겠다.


아무튼,

독립은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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