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나를 혼내왔다.
진료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참 오랫동안 나를 혼내오며 살아왔다는 것. 그걸 처음 느낀 건, 어떤 환자분을 위로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묘하게 나한테도 닿았다.
“그동안 참 많이 혼났겠어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꽤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가는 대로 살고,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는 사람. 실제로 대학 동기들도 그런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의대 졸업 후 다들 인턴 준비할 때, 나는 혼자 멈춰서 버렸다.
‘혹시 내가 의사 말고 다른 일이 더 맞는 건 아닐까?’
‘진짜 이 길이 나한테 괜찮은 걸까?’
이런 고민이 쌓이다 못해, 결국 잠깐 다른 길을 기웃거렸다.
당시에 참 이런저런 연락들이 많이 왔었다.
"야, 너답다."
"넌 진짜 어디로 튈지 몰라."
"난 네가 의사 자체를 안 할 줄 알았어 ㅋㅋ"
(심지어 “자연인 되려는 거야?”라는 말도 들었다. 아마 내가 잠깐 등산 가는 걸 누가 본 모양이다.)
사실 나는 틀에 박힌 걸 별로 안 좋아한다. 공연도 해봤고, 힙합 크루도 들어가 봤고. 쓰임새는 몰라도 자격증도 참 많이 땄다. 호텔에서 서빙도 하고, 회사에서는 사무직 알바도 해보고, 공사장에서는 시멘트도 날라봤다.
길거리에서 솜사탕을 팔던 날도 있었다. 일식, 제빵, 목공, 드럼, 재즈, 디제잉, 작곡, 복싱, 꽃꽂이까지…
정리하다 보니, 내 별명이 왜 위키피디아였는지 알겠다.
그런데 가까운 친구들은 안다. 나는 자유로운 척하지만 사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눈치를 많이 보고, 자기 검열이 심하다는 걸.
가령 나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때도 굉장히 조심스럽다. ‘내가 전문가가 아닌데 괜히 아는 척하는 건 아닐까?’ ‘혹시 기분 상하면 어쩌지?’ 질문 하나를 하더라도, 속으로는 이미 한 열다섯 번쯤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뒤에 입을 연다. 그래서 함부로 질문도 잘 못한다.
누군가를 지적해야 할 상황에서도 오래 망설인다. ‘나도 완벽하지 않은데, 말할 자격이 있을까?’ ‘저런 실수, 나도 했었는데…’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으로만 몇 바퀴를 돈다. 이 문제로 대학병원 근무 당시에도 상급년차가 되어서 아랫년차 관리를 못한다고 엄청 혼났었다.
칭찬을 들어도, 고맙기보다 의심부터 한다. “정말요?” “아니에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예요.” ‘이 정도는 누구나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어떤 일을 끝내도 후련하기보다 아쉽다. ‘이것도 할 수 있었는데.’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뭔가 하나를 해냈다 싶어도, 마음속 채점표에는 늘 70점 정도.
이렇게 살아오면서도, 이런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모자라니까, 불안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겨왔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내 마음과 꼭 닮은 사람들을 자꾸 마주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쉬지 않고 혼내는 사람들을 말이다.
“왜 저는 이 모양일까요.”
“또 실수했어요.”
“저는 그냥 못난 사람인가 봐요.”
그 말들을 계속 듣다 보니, 어느 순간 환자분들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을 비치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하루는 “선생님도 가끔은 그렇게 느끼세요?” 하는 한 환자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정말 그랬다.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고, 혼내는 데는 참 후했다. 잘한 건 ‘운이었겠지’, 못한 건 ‘역시나 내가 부족해서’로 정리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칭찬을 먹고 힘을 내는 사람인데. 흥이 나야 에너지가 나는 사람인데. 그동안 흥도 안 나게 나 자신도 나를 엄청나게 혼을 냈다.
어쩌면 흥도 나지 않을 여러 상황들에서 묵묵히, 별 탈 없이 버텨왔다는 것도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름 잘 해낸 거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이제는 좀, 내 편도 들어줘야지. 조금은 부족해도 괜찮다고,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고, 지금까지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요즘의 나는 자신에게 한 번쯤은 진심으로 “야, 너 진짜 수고했다.”라고 건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