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첫사랑 (1)

첫 단추는 중요하다

by 제이

기수환영식을 기점으로 나는 H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일상을 공유하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고 이유없이 연락을 이어나가며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려 했다. 그러자 학과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둘이 무슨 사이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나는 항상 아무 사이 아니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나는 혹시라도 H를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이미 나는 잦은 술자리와 행사 참여로 인해 이름과 얼굴이 잔뜩 팔린 상태였고, 나로 인해 H까지 구설수에 오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밤을 새워 H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서로의 알지 못하던 사정들과 속마음, 그리고 여러 이여기들을 나누다 보니 훌쩍 아침이 되었다. 문제는 자고 일어나 보니, H가 통화내역 7시간이 찍혀있는 전화 화면을 캡쳐하여 인스타에 공유해버렸다는 것이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선배들 중에는 나와 H가 이미 사귀는 사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어딜 가든 나와 H를 엮는 일이 허다했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H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호감을 표시했고 나도 더 이상 H를 그럭저럭 친한 사람 이상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자주 찾아갔고 늘 신경썼다. 서로의 휴대폰 비밀번호, 집 도어락 번호까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H도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걸 겁내고 있었다.


한편 학과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로 2학년 남자 과대 선배의 잘못된 언행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신입생 시절부터 썩 평판이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과대표의 직책도 딱히 할 사람이 없어 다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를 과대표로 선출했던 모양이다. 급기야 그 선배가 우리 기수의 여자 동기들에게 집적거리다 못해 성희롱, 성추행을 일삼은 사실이 소문나면서 해당 문제는 천천히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피해자이자 소중한 동기들을 중심으로 모두가 해당 남과대의 사퇴와 함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대의원회의 주도 하에 2학년 남과대에 대한 조사와 탄핵안 논의가 진행되었고, 임시총회를 통한 남과대의 탄핵과 사과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우리 기수 모두가 사과문을 끝까지 듣지 않고 보이콧 형식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사로잡고 있었다. ‘수직적인 기수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다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차마 그 생각을 입밖으로 내지는 못하였고, 속으로만 간직하며 천천히 일상으로복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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