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첫사랑 (3)

나를 떠나지 마

by 제이

처음에는 동기들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나를 살짝 피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점점 연락의 빈도가 느려지고, 나와의 만남을 회피하기 시작하는 H의 행동은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게 나와 H의 관계의 본질이었다. 나와 자신의 마음을 직면하고 싶지 않은 H와, 그런 변덕스러운 모습이 가져오는 불안에 중독된 나.


둘이 있을 때에는 평소와 같은 친밀함이 유지되었다.그러나 조금이라도 남의 시선이 느껴지면 나는 H에게 투명인간이 되었다. 보란듯이 다른 남자 동기와 노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정립되지 않은 관계란 그런 것이다. 나와 H는 평범한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만, 책임감과 솔직함 따위를 요구하기에는 흐릿한 관계였다.


그때 즈음 정말 많은 이들이 나에게 H와 무슨 사이냐고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H를 좋아하는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H가 느끼게 될 부담이 걱정되었기에, 나는 그냥 친구 사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H와의 변덕스럽고 불안한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견디기 어려워졌고, 나는 H에게 연락을 남겼다. “우리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 하지만 H는 약속이 있다거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 가며 나를 피했다.


당시 학과에서는 캠퍼스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야간에 교내 및 학교 주변을 순찰하는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루는 학교 순찰을 끝내고 동기들이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평소 술을 싫어했던 나였지만, 그날은 정신없이 술을 들이부었다. 술 기운은 아니었던 것 같다. 취했다고 하기에는 약간 피곤할 뿐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했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꺼내들어 최근 통화기록에서 ‘60기 H'를 찾아 눌렀다. “왜 전화했어?” H가 물었다.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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