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니 핑크 Nobody Loves Me

2025/02/10

by Stellar


인아가 독일어를 공부하는 중이라 독일 영화를 보기로 하고 보고싶었던 독일 영화들을 뒤져보다가 생각난 것이 이 영화였다. 1994년 작인 이 영화에는 이제 막 통일이 된 독일의 혼란과 자유로움, 세기말의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외로움에 목마른 여자의 사랑찾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파니가 한 말, "여자의 행복에 꼭 남자가 필요한 건 아니죠."를 기억하고 영화를 보아야 한다. 30년 전의 독일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29세의 여성이 노처녀라 불렸나 보다. 30대가 되면 마치 젊음이 끝나는 것처럼 말하는 직장 동료와 친구, 엄마의 무례함에 자신감과 의욕을 잃은 그는 죽음을 체험하는 동호회에 가입해 자신의 관짝을 짜고 효율적인 자살 방법을 배운다. 모순적이지만 동시에 연애를 하기 위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술사를 찾아 점을 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파니의 모습은 사실 사랑에 빠졌다기 보다는 목적에 가까운 연애를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인다.


파니가 가장 본인의 모습으로 보일 때는 주술사인 친구 오르페오와 함께있을 때인데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오르페오의 죽음을 위한 준비를 위해서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는 행동력을 보인다. 금 한덩어리에 멋진 옷을 입고 유리반지를 남긴채 지구를 떠나는 오르페오의 마지막 말은 영화의 주제가 사랑도 죽음도 아닌 '현재의 삶'이라는 점을 확실히 한다.


"겁내지마. 과거는 너의 뒤에있는 너의 모습이고, 미래는 네 앞에 있는 너의 모습이야. 과거와 미래는 항상 너와 함께 하는거야. 그것은 가끔 너를 유혹할거야. '좀 앉아서 쉬어' 휴식을 취하라고 말하면서 네가 원하는 무언가를 약속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 말 듣지마. 계속 앞으로만 가. 그리고 시계는 차지마. 항상 몇시인지 알려고 하니까.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만 가져. 알았지?"


30세 생일을 맞은 파니는 오르페오와 함께 촛불이 가득 꽂힌 케이크의 불을 끄며 행복해 했다. 유쾌한 마음으로 나이를 먹으며 시계를 들여다 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면 그만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런던 카페 Ragged School Caf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