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4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나 하는 생각 밖에 없다가 하산할 때는 온갖 잡생각이 다 든다. 전혀 계획에 없던 산행이라 튼튼하긴 하지만 눈길에 등산하라고 만들어지지는 않은 부츠와 어깨에 걸쳐 멘 커다란 가방이 영 풍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몇 사람과 마주치긴 했지만 각자의 속도로 걸으니 한 번 스쳐 지나가고 나면 다음 사람을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처럼 고요함이 내려앉는다.
산 정상의 박물관에서 이 산에도 늑대와 쿠가, 그리즐리베어가 살고 있다고 했다. 동물들도 사람이 내놓은 길을 걷는 것을 선호하는지 등산로 주변에 크고 작은 동물 발자국이 찍혀있다. 온통 눈이 쌓여있기는 해도 알아보기 쉽게 한 길로 난 길인데도 내 옷이 스치며 만들어 내는 소리가 흰 공간에 유난스럽게 울릴 때마다 소스라친다. 혹여나 있을 야생동물들과의 조우 시나리오를 쓰며 속도를 내다가 문득 멈추어 섰다. 나를 제외한 세상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는 것을 느껴서이다. 6년 전 여름에 왔을 때 나무마다 오르내리던 다람쥐들은 겨울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이따금씩 바람과 눈의 무게에 휜 뿌리가 얕은 침엽수들이 끼익 하고 몇 백 년 만에 처음 열리는 낡은 대문이 낼 법한 소리를 내는 게 전부다.
경사가 많이 진 모퉁이마다 앞길을 간 사람들이 신발굽으로 눈을 패고 다져 눈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이 찍힌 눈계단에 내 부츠굽을 겹칠 때마다 그만큼씩 더 다정해진다. 어설픈 신발로 눈길을 등산하고도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게 해 준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 다음 사람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계단을 밟을 때마다 발에 힘을 가득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