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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Sep 07. 2023

10. 언제까지 앉아서 호구 취급당할래?

나도 이러는 내가 싫다. 

  남편과 나의 다른 점 중 하나는 나는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남에게 할 말을 다 못 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번 내 머리를 치며 이렇게 외친다. “멍청이, 똥 멍청이.”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쯤, 남편과 나는 J 시의 유명 식당에 식사하러 갔었다. 그리고 5분 넘게 식사하던 중 내가 먹던 밥에서 초록색 애벌레를 발견했다. 나는 시골 출신이고 뭐 메뚜기고 개구리도 먹어본 전력이 있던 터라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식당 안내판에 유기농 채소를 쓴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기에 그냥 건져 내놓고 가만히 있었다. 어느 정도 배가 불렀고, 좋은 게 좋은 거라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남자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 점장을 불렀다.

“여기요. 여기 좀 와보시겠어요.?”

“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 보이시죠, 음식에서 애벌레가 나왔습니다.”

“네. 저희가 유기농 채소를 쓰다 보니 간혹 이럴 때가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새 음식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

새로운 음식은 곧 나왔고, 나는 배가 불러 2~3 숟갈 뜨다가 식사를 마쳤다. 밖에 나와 그 남자에게 사람 민망하게 왜 그랬냐고 물었다. 우리가 지불한 비용에는 음식값뿐만 아니라 손님에 대한 응대비도 포함이라고 했다. 손님이 식사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당연히 거기에 따라 환불이나 사과가 이어지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점장이 난처해하는 것도 안쓰러웠다.    

 

  결혼 후에도 이런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나는 산 물건을 잘 반품하지 않는 성향의 사람이었다. 항상 선택지는 그냥 쓰거나 버리거나 누구 주거나 셋 중에 하나였다.     


  2012년 한여름 우리는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선풍기보다 강력한 냉풍기를 사러 마트를 찾았다.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완전 냉장고처럼 시원한 냉기가 콸콸 솟아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가 구입한 냉풍기는 소음만 더 심했을 뿐 선풍기와 성능 면에서 차이가 없었다. 우리가 뜯었고 사용했기 때문에 그냥 쓰자고 말렸지만, 다음날 남편은 냉풍기를 다시 곱게 포장해 마트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새 선풍기를 구매해 왔다. 어떻게 순순히 환불했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4개월도 안 된 애가 시끄러워서 도통 잠을 못 잔다. 애 때문에 잠도 못 자는 아내가 어떻게 냉동 팩을 계속 보충하냐?’ 등등 구구절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고, 다른 선풍기를 사가는 조건으로 반품을 받아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선풍기는 지금까지 잘 사용 중이다.   

  

  그 이후에도 쭉 까다로운 민원 처리는 남편이 모두 해왔고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다’를 믿고 살고 있다. 그래서 가끔 호구 취급을 당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이 틀린 거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하루는 옷 수선집을 찾았다. 언니가 인터넷으로 주문해 준 아버지 여름 바지 기장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처음 간 곳은 휴가라 문을 닫은 상태였고, 다행히 2번째 찾은 수선집은 영업 중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동네를 돌아다닌 뒤라 나는 지쳤고, 바지 3개를 꺼내 놓고 길이 선까지 설명한 뒤 오후에 찾으러 가겠다 했다. 3시가 넘어 바지를 찾으러 갔고 바지를 1개 펼쳐보니 깔끔하게 수선이 잘 되어있었다. 3개에 9000원이라 카드 결제하기 죄송해서 계좌이체를 해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옷을 정리하면서 바지 3개를 다 펼쳐서 보니 아뿔싸 바지 1개에 문제가 있었다. 가위로 잘렸는지 모르겠지만 단이 2~3cm 정도 찢어져 있었다. 고민했다. ‘아 내 잘못이야! 내가 그 자리에서 확인을 똑바로 하고 가져올걸. 값도 싸게 해 주셨는데 그냥 모른 척 넘어갈까? 아버지 집에서 편하게 입으실 건데 미안하게 또 가져가는 건 아니지.’ 이걸 이틀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3일 차에 전화를 드렸고, 사장님이 오라고 하셔서 재방문했다.  

    

 평생 고구마로 살아온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자 사장님의 반응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이상하네.”

“집에 와서 3개 다 펼쳐보니 이것만 이렇더라고요.”

“이상하네, 이 찢어진 부분을 처리하고 다시 접어 올리려면 바지 길이가 약간 짧아질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네, 네, 다시 수선해 주세요.”

사장님은 마지막까지 옷을 건네주시면 한마디 덧붙이셨다.

“이게 여름 원단이라 올이 헐거워서 이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옷감이 헐겁든지 어쨌든지 좌우지간 자신이 수선한 옷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손님께 들려 보낸 죄.

수선은 본인이 했으면서 옷감 탓만 한 죄.

자기 가게를 3번이나 찾은 고객께 미안하단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죄.

누가 죄인인가?     


 이 수선집요. 음. 손절입니다. 30여 년 동안 먹은 고구마를 소화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소화제가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 이상 호구로 살지 않겠어요. 

고구마 고구마 호박고구마(나문희 선생님 명대사 기억나시죠?.) 저 오늘 불 뿜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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