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곡은 유정석의 질풍 가도
목요일 점심시간이었다. 옆 반 선생님이 6학년 방송부 애들을 불러 내일 방송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이들이 이번 주는 쉬면 안 되냐고 물으니까 상자에 신청곡이 많아서 이번 주 방송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생각 없이 끼어들었다. 나 분명 J인데, 요즘 왜 계속 P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얘들아, 선생님 내일 방송 같이해도 돼?”
“예?, 진짜요? 무르기 없기예요”
“응, 선생님이 특별 게스트인 거지?”
“좋아요, 선생님. 내일 아침 방송해야 하니까 일찍 오세요. 8시 5분까지는 오셔야 해요.”
“걱정하지 마, 나 맨날 8시 전에 와.”
저녁을 먹으면서 후회했다. 나에겐 방송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한 5년 전 즘, 학교에서 월 1회 방송 조회 이런 걸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큰 학교라 부장교사가 돌아가면서 아이들에게 훈화 말씀 같은 걸 해주는 코너가 있었다. 독서교육부장 이런 걸 하던 차라, 9월 무렵 내 차례가 되었다. 밤에 나름 원고도 쓰고 준비했는데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마이크 에코가 문제였다. 그냥 에코를 무시하고 원고만 읽으면 되는데, 나는 내 목소리도 신경 쓰고 에코도 신경 쓰는 바람에 방송이 돌림 노래가 되어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고,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날, 아니 한 달 내내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던 아픈 추억이 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금요일 아침, 나는 내 신청곡 종이도 준비해 갔다. 아이들이 방송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보이는 라디오가 아니라서 그냥 소리만 나간다.
“얘들아, 근데 이거 마이크 울리니?”
“아니요, 거의 울림 없어요. 그냥 읽으시면 돼요.”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방송이 능숙한 애들은 노래가 나가는 동안 핸드폰을 했다.
“볼펜 없니? 여기 멘트 좀 고쳐야겠는데.....”
“어? 볼펜은 없고, 여기 네임펜 있어요.”
핸드폰 볼 시간에 원고 수정 좀 하고, 클로징 멘트 좀 연구해 봐라고 잔소리를 하면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할까 봐 꾹 참았다.
1학년의 뽀로로 오프닝 곡부터, 고학년 아이들의 걸그룹 노래까지 다 듣고 나니 딱 23분이었다. 마지막 곡은 내가 준비한 사연이었다. 매일 일에 치여 칼퇴근이 힘든 교무부장님과 지난달 배구하다 손가락 부러진 체육부장을 응원하는 글을 썼다. 8시 27분 우리는 클로징 멘트를 했다. **라디오 스타 여기까지입니다. 아이들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아침에 생각한 폭탄을 터트려 볼까 생각했지만, 후환이 두려워 참았다. 여러분 즐거운 주말 보내요. 또 좋은 기회에 찾아오겠습니다.
방송실 문을 열고 나가니 우리 학생회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달려왔다.
“선생님”
“됐고”
얘는 극 F, 나는 극 T, 우리는 진짜 안 맞다.
그다음 쪼르르 교무실로 달려갔다.
“교무선생님, 제 사연 들으셨죠?”
“무슨 소리지? 교무실은 방송 안 나와.”
“아, 그래요. 제가 어제 준비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복도에서 들었다.”
“아하! 저 마지막에 폭탄 투척하려다 참았습니다.”
“폭탄이 뭔데?”
“다음 주 특별 게스트는 여러분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과학선생님이.............”
“야이 씨. ㅋㅋㅋㅋㅋㅋㅋ”
“후환이 두려워서 못했어요. ㅋㅋㅋㅋㅋㅋ”
교무선생님=과학 선생님. 새로운 제 취미는 교무선생님 놀리기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가 교무선생님을 어떻게 놀려드리는지, 아니 아닙니다. 웃겨 드리는지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