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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가득한 시대에서 사랑하기

전쟁통보다 더한 혼란과 편견의 구덩이들 사이에서 그 사람과 함께 살아남기

by 융중복룡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또 아프게 하고, 또 행복하게 하는 감정은 없을 것이다.


인간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욕심을 원 없이 끌어낼 수 있는 것도 사랑이고, 인간의 가장 고결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극한까지 발휘하게 해 주는 것도 사랑이다. 누구라도 쉽게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고, 또 그렇게 자라난 감정을 계속 다치지 않게 잘 보살펴주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사랑의 보편성은 자본주의 시대를 만나서 더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인간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돈이 된다는 뜻도 된다. 누구에게나 팔아 먹을 수 있는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이상한 양가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극도로 예리하게 가공된, 날카로운 사랑이라는 환상 속에서 그들은 현실의 사랑을 메마른 눈으로 지켜본다.


운명적인 사랑, 어떠한 조건 없이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사람들은 상대방의 외모, 재력 따위의 조건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엄격하게 따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요즘의 메마른 사랑, 이른바 현실적인 사랑이라는 것들은 오히려 가능을 불가능으로 만들고 소통을 불통으로 만들고 무제한을 제한으로 잡아 두는, 사랑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장 옹졸한 형태로 묶어 두는 식의 모습들만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인격적인 성숙함이 부족해서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현실적'이라는 말로 모든 사랑의 가능성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시도를 통해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득을 얻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번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한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서 스스로를 더욱 큰 어리석음 속에 빠뜨리고 있는 가엾은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전쟁통에서도 사랑은 하고, 전쟁통에도 아기는 태어났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가가 소멸될 위기라고 인식될만큼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모든 것이 멈추고 정체되어 줄어들고 있다. 그 말은 우리나라가 지금 겉으로 보이는 전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혼란지수는 폭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통 한 가운데보다도 더한 혼란과 불안 속이라는 뜻이다.


인터넷과 온갖 매체에 넘쳐 나는 언어들을 한번 지금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찬찬히 살펴 보자. 거기 어디에 서로를 격려해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힘을 내게 해 주는 사랑의 말들이 있는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서로를 정신적인 감옥 속에 가두고, 서로가 아무 것도 시도하지 못하도록 편견과 오해로 둘러싸고,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게 막는 혐오와 편견의 언어들만이 가득함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혐오가 가득한 시대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한 끗 차이로 정말 아름다워질 수도 있고, 또 정말 더러워질 수도 있다. 그 사랑을 잘 가꾸면 사회와 국가의 기본이 되는 한 가정을 평생 예쁘게 꾸려 나갈 수도 있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 하면 거기에서 데이트 폭력, 치정범죄, 가정의 파탄 등 온갖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지저분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이것은 남녀 간의 사랑 안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또 그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함으로써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극치에 이르게 되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마음, 즉 양심이 함께 있어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양심이 없이 욕망으로만 서로를 대할 때, 남녀 간의 사랑은 가장 빠른 속도로 파국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욕망을 빼놓고 양심만 있으면 되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양심만으로 사랑할 거면 모든 인류를 다 똑같이 사랑하는 인류애의 실현에 한 몸을 던지면 되지 굳이 한 사람을 정해서 이성 간의 사랑을 나눌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가장 치열한 욕망, 그리고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 사람을 놓아 주겠다는 마음까지도 일으키게 하는 가장 고귀한 양심, 그 모든 것이 남녀 간의 사랑 안에서는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이 비율을 건강하게 잘 맞춰 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 잡은 손을 놓지 않고도 이 혼란의 시대를 하루하루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자포자기와 좌절에 빠져 쏘아대는 혐오와 편견의 총탄에 스쳐 상처 입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처 입어서 서둘러 응급 처치를 하고 엄폐물 뒤에 숨어야 하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고, 그리고 우리가 그 순간 함께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면, 그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우리의 마음 속에 생생하다면.


그러하다면 우리는 발 디딜 때마다 다가오는 혼란의 구덩이들 사이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천천히 새로 올 사랑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어떠한 조건의 구속이나 제약 없이,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그 날. 비 온 뒤 흩날리는 벚꽃잎들처럼 꽃비 내리듯 평범한 사람들의 제각각의 사랑이 바람의 결을 따라 쏟아져내리는 그 날. 그러한 날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잔잔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서로를 사랑이라는 진심으로 대하는 이 순간이, 미래의 어떠한 성패와 상관 없이 그 자체로 온전히 아름다울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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