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 세상에서 따뜻한 사랑을 시작하는 첫걸음
일은 사랑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2000년 전의 성자 예수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였다. 서로 사랑한다는 말씀이 참 좋긴 한데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에 이르러서는 '이게 바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온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남에게 해 주는 것이 요즘 말로는 '서비스'다. 우리가 흔히 '서비스 업종'이라고 부르는 직종에 종사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비대면으로 타인에게 어떠한 가치를 전하는 일까지도 광범위하게는 이 '서비스'에 포함된다. 그러니 우리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분들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서 일을 하는 사람은 예수의 말씀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가 안 되겠느냐만은, 일신의 안위를 위하는 마음만으로 일하기보다는 이 일을 통해서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 몫을 하고자 하였다면 그 분도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고귀한 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오직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만 일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보기가 어렵다.
요즘 세상에 비인간적인 일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을 하는 사람보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만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이는 사회 전체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 뻔하다. 애초부터 돈이 목적이었고 나 하나의 생존만이 목적이었던 사람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치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우리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그에 걸맞는 대가를 받아서 생활을 영위한다.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일은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남에게 먼저 해 주는 것'이다. 그에 따른 대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왜곡된 자본주의에서는 사람들이 이것을 오해하여 돈을 벌기 위해, 이윤을 얻기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유교의 경전인 '대학(大學)'에서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라고 하였는데, 이 선후와 본말의 관계를 거꾸로 이해하였기에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가 생겨난 것이다.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고, 이 사랑에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이 그 대가로 돈을 준다고 생각하면 본말이 전도되지 않은 것이고 선후 관계가 제대로 잡힌 것이다.
사랑을 많이 베푼 사람이 돈을 많이 번다면 그것은 왜곡되지 않은 자본주의다. 왜곡되지 않은 자본주의에서는 부자가 존경을 받는다.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 사람은 이 사회에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베풀지 않고 돈만 챙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겨나고 그들이 계속 돈을 번다면 이것은 왜곡된 자본주의의 상황이다. 왜곡된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부자를 섣불리 존경하기가 어렵다. 이 사람이 정말 사랑을 많이 실천해서 저 자리에 갔는지, 무고한 피해자들을 많이 양산하면서 저기까지 갔는지 한눈에 알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꼭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부터 하려고 이상적인 생각만 할 필요는 없다. 대가를 바라고 돈을 벌기 위해 움직였다 하더라도 그 움직임이 고객 만족을 지향하기만 하면 그것은 곧 훌륭한 사랑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돈을 받은만큼 그 돈값을 꼭 하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곧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의 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지불했을 때 그만큼의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기대하듯이, 나도 나에게 돈을 지불한 고객에게 그만큼의 서비스를 주고자 하는 것이니, 내가 받고 싶은 대접을 남에게 먼저 해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어찌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고객이 만족한다는 것은 굉장히 높은 수준의 사랑 실천이다. 고객이 만족한다는 것은 곧 나의 서비스로 내 고객이 잠깐이나마 마음의 평안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객을 살맛나게 하고, 고객이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얻게 하며, 고객으로 하여금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고객이 만족해서 평안을 얻게 하니, 고객 만족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사랑의 실천이며, 사랑의 시작이라고도 감히 말할 수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고결한 사랑도 물론 좋지만, 대가를 받고 일을 할 때만이라도 그 대가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애쓴다면, 거기서부터 현실에 맞는 사랑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기본적인 사랑조차 무너진 세상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상적인 사랑까지 논하는 것은 어쩌면 시기 상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온갖 사기 행각과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종교를 떠나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누구나 새겨 들을 만하다.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고, 내가 고객일 때는 부당한 갑질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받고 싶은 대접을 남에게 해 주면 되는 것이다.
AI 시대가 도래하여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요즘,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정말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이 뜻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남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