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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pr 29. 2024

남의 이야기 훔쳐 듣기 3

느티나무는 나무의 왕이다










느티나무는

나무의 왕이다.

가장 먼저 싹을 띄운다.


그 느티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한 오후가 펼쳐진다.

팔순이 넘어 뵈는 흰 수염을 관우처럼 늘어뜨린 키 큰 노인과 배가 불룩 나온 노인,

두 노인은 낡은 평상에
부채질을 하며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바쁘다지?"

키 큰 노인이 입을 뗐다.
그의 목소리는 묵직했고, 눈빛에는 깊은 사색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 바쁘다 바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것만 찾아."
옆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도 젊었을 때는 그랬어. 새로운 것, 신기한 것에 눈이 빛났지."

"맞아, 맞아. 하지만 요즘 것들은 항상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나 봐. 항상 그 무엇인가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야."
키 큰 노인이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
옆 노인이 부채를 탁탁 치며 말을 이었다.
 "젊은이들이 우리 시절과 다르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야.
변화는 시대의 필요에 따른 것이니까. 우리도 변해왔잖아,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말이야."

"그래, 그래. 나무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 우리가 변하든 말든 말이야."
키 큰 노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사람들이 모이는 이 나무처럼, 우리도 이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 우리의 우정처럼 말이야."
옆 노인이 말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두 사람은 느티나무 그늘을 뒤로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의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와의 대화처럼
의미 깊고 맛깔스러웠다.

나무는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며
마냥 그늘을 제공했다.

느티나무의 그늘은
더욱 넓어졌고,
두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몇 발짝을 떼다가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나무 아래 저만치서
한 젊은이가 자신의 드론을 날리고 있었다.
드론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노인들의 눈이 흥미로운 빛으로 반짝였다.

"보거라, 저것을!"
키 큰 노인이 손가락으로 드론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늘을 날다니, 이것이야말로 요즘 아이들의 놀이구나."

"저것도 우리가 어렸을 때의 연날리기와 같은 거 아닐까?"
옆 노인이 추억에 잠긴 듯 말했다.

 "그런데 이제는 연이 아니라 기계가 되었군. 시대가 시대니만큼 그에 맞는 놀이가 있는 법이지."

젊은이는 호기심에 가득 찬 노인들에게 다가와 드론을 조종하는 법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점점 흥미가 생겨 자신들도 한 번 조종해 보고자 했다.

드론이 나무 사이를 유연하게 날아다니자,
두 노인은 젊은이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 참,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야."
키 큰 노인이 말했다.

"그래도 보니까,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마음은 같은 것 같아."
옆 노인이 말하며 드론의 조종간을 조심스럽게 다뤘다.

저녁 무렵,
세 사람은 나무 아래에 앉아 각자의 시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대화를 이어갔다.
 젊은이는 노인들에게 과거의 삶과 현재의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들려주었다.
 
노인들은 지혜로운 조언과 함께 옛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느티나무는
이 모든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세대를 이어 주는 소통의 장이 되어주며,
그늘 아래에서는 항상 새로운 만남과 이야기가 펼쳐졌다.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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