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y 13. 2024
■
백 년 고택에서
시인 백영호
백 년 고택에 들어서니
닳아서 그을리고
손때 묻어
빛바랜 시간들이
똬리를 틀고
한자리 차지했다
지난겨울
폭설이 앉았던 자리엔
봄볕이 쉬었다 가고
어젯밤엔 달빛이 바람과
한참을 놀다 자고 갔다
아침마다 마른기침에
긴 담뱃대로 니코틴에 찌던
재떨이에 재를 떨던
김 영감님과
아침밥상을 들고
종종걸음 옮기던
행주치마 큰며느리
옆모습은 모두
어디로 갔을꼬
여름이 시작되는
그늘을 찾는 이즈음
영화의 시간들이
말없이 빠져나간
대청마루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나그네
백 년의 시간여행 사막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
ㅡ
백영호 시인의
"백 년 고택"은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잔상을 시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시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생생하게 재현된 공간 속에서 독자를 유도한다.
각 행은 시간의 층을 벗겨내며,
독자로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감성 사이를 여행하게 만든다.
첫 부분에서
"백 년 고택에 들어서니"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이 시는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시작한다.
"닳아서 그을리고 손때 묻어 빛바랜 시간들이 똬리를 틀고 한자리 차지했다"는 표현은
공간이 오랜 시간 동안 겪은 변화와 남겨진 흔적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는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감정과 기억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시의 중반부에는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움직임이 등장한다.
"지난겨울 폭설이 앉았던 자리엔
봄볕이 쉬었다 가고"라는
구절은
자연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며,
이러한 자연의 변화가 공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어젯밤엔 달빛이
바람과 한참을 놀다 자고 갔다"는 문장은
자연이 가진 생동감과
시간이 가진 유연성을 동시에
포착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과거 인물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침마다 마른기침에
긴 담뱃대로 니코틴에 찌던
재떨이에 재를 떨던 김 영감님과
아침밥상을 들고
종종걸음 옮기던
행주치마 큰며느리 옆모습은
모두 어디로 갔을꼬"라는
부분은
과거의 일상적인 삶의 단면을 드러내며,
그 인물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그들의 존재가 감각의 세계로
사라졌는지를 묻는다.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존재와 흔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사이의 연결 고리를 탐구하는
시인의 시각을 반영한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름이 시작되는 그늘을 찾는 이즈음
영화의 시간들이 말없이 빠져나간
대청마루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나그네
백 년의 시간여행 사막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라는 구절로
마무리된다.
이는
시인 자신이나 독자를
나그네로 설정하며,
그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탐색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백 년의 시간여행 사막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는 표현은
시간을 거대한 사막에 비유하며,
그 사막을 걷는 것은
과거로의 긴 여정이자,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를 재조명하는
여정임을 암시한다.
시인 백영호는
"백 년 고택"을 통해
공간과 시간,
그리고 기억 속 인물들을 통해
변화하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공간은
단순히 시간을 표시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감정과 기억이 깃든
살아 있는 역사의 증거로 기능한다.
이 시는
독자에게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며,
시간과 공간의 깊이를 탐구하도록
초대한다.
백영호의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을 재구성함으로써
독자에게 감성적인 여정을
제공한다.
시인은
과거의 삶의 편린들을 조명함으로써
현재의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독자에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보도록 도전한다.
이러한 시적 표현과 주제의 탐구는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시간의 가치와 기억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