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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25. 2024

김수영의 시 '풀'을 청람 평하다

김수영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풀


                                           시인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수영의 시 “풀”을 평론하다




김수영의 시 “풀”은
그의 대표작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자연현상을 묘사한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삶과 저항, 그리고 희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걸작이다.

먼저, 첫 행 “풀이 눕는다”에서 '풀'은 인간 혹은 민중을 상징한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는 장면은 외부의 억압과 폭력에 의해 무력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한다. 이어지는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라는 구절은 억압에 굴복하고 슬픔을 느끼는 과정을 나타낸다. 날이 흐려짐은 절망적 상황의 지속을 의미하며,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는 절망 속에서 더욱 깊은 슬픔에 잠기는 상황을 묘사한다.

다음으로,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에서 풀의 빠른 반응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 외부 상황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 모습을 그린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구절은 다시 일어나는 희망과 회복력을 나타내며, 이는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기하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다.

세 번째 부분,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는 절망이 점차 깊어지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발목과 발밑까지 눕는다는 것은 전신이 눕는 것보다도 더 깊은 절망에 빠져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구절 후에 이어지는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는 다시금 회복과 희망을 암시한다. 절망이 깊을수록, 회복의 의지는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에서 풀뿌리가 눕는다는 것은 절망이 근본적인 차원에 이르렀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는 풀의 생명력과 연결되어 있다. 풀뿌리는 지표면 아래에서 살아있고, 다시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억압과 절망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생되는 인간의 본능적 생명력과 희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는 표현의 섬세함과 은유의 깊이에서 빛난다. 자연현상을 통해 인간의 삶과 감정을 유려하게 담아낸 시인의 능력이 돋보인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반복적인 구절 사용을 통해 리듬감을 주고, 독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한다는 점이 있다.

또한, 상반된 이미지를 교차 배치함으로써 절망과 희망, 눕는 것과 일어나는 것의 대조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김수영 시인의 “풀”은 억압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을 전하고자 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감정적 회복을 넘어서 사회적,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내포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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