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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찻잔

청람 김왕식







늦가을의 찻잔




청람 김왕식




툇마루 끝자락에 걸터앉아
석양이 스미는 들녘을 바라본다.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사이
주름진 손끝에 따스한 찻잔이 닿는다.

노인의 손, 그 위에 겹쳐진 또 다른 손
긴 세월의 이야기를 가만히 나눈다.
"이제는 바람도 우리 곁에 머무네."
가만히 웃으며 찻잔을 들어 올린다.

석양은 천천히 산 너머로 기울고
바람도, 시간도 멀어지는 이 순간
늦가을은 그들의 미소 속에 깃들고
함께한 날들의 깊이를 잔 속에 우려낸다.

텅 빈 들판마저 따뜻해진 이 시간,
노부부의 눈동자엔 서로가 고운 단풍으로 물든다.
말 없는 찻잔 사이에
두 마음은 여전히 봄을 피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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