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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의 '깊어가는 가을'을 청람 평하다

김왕식








깊어가는 가을





시인 주광일







짙어가는 단풍을 따라
점점 깊어가는 가을이여
나는 그대가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사라지길 바란다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도저히 납득할수 없는
고통일랑 남기지 말고
불필요한 천둥 번개나
상상 못 할 늦가을의 태풍이나
산과 바다를
마구마구 흔들어버리는
지진 같은 것 없이
나를
그저 자유인인 채로 남겨놓고
신사답게 물러가길 바란다
곧 미련 없이
내 앞에서 물러가버릴
2024년의 가을이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은 그의 시를 통해 고요한 삶의 내면과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시대의 변화와 개인의 심리적 갈등을 깊이 있게 탐구해 왔다. 그의 시에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내재된 고뇌와 사색이 짙게 배어있다. '깊어가는 가을'은 이러한 시인의 정서가 응축된 작품으로, 계절의 깊이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다.

첫 행 "짙어가는 단풍을 따라"는 자연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그려내어 가을이 성숙해지는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단풍의 짙어짐은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무게감을 상징하며, 독자를 계절의 감각으로 이끈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계절의 흐름 속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바라보며 점점 더 다가오는 시간의 압박감을 느낀다.

"점점 깊어가는 가을이여"는 반복적 구성을 통해 계절의 흐름에 대한 화자의 감정을 강조한다. 이 행은 단순히 가을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에서 나아가, 점점 깊어지는 인생의 노정을 암시한다.

"나는 그대가 / 소리 없이 흔적 없이 / 사라지길 바란다"는 화자가 느끼는 내면의 갈망을 드러낸다.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소망을 나타낸다. 이 구절에서 가을은 단순한 계절적 현상이 아니라, 화자가 직면하고 있는 고통의 은유로 기능한다.

"내가 /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 고통일랑 남기지 말고"에서 반복적 어휘 사용은 화자의 무력감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 부분은 가을이 떠나면서 남길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하며, 그가 겪고 있는 감정적 혼란을 강조한다. 이러한 표현은 독자로 공감과 동정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감정의 진폭을 확장시킨다.

"불필요한 천둥 번개나 / 상상 못 할 늦가을의 태풍이나"는 자연의 격렬함을 빌어 내면의 격동을 묘사한다. 천둥과 번개, 태풍 등은 모두 예상할 수 없는 위기를 상징하며, 화자는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이는 일상 속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반영한다.

"산과 바다를 / 마구마구 흔들어버리는 / 지진 같은 것 없이"는 자연의 거대한 힘을 통해 내면의 흔들림과 불안을 강조한다. 산과 바다는 안정성과 깊이를 상징하는데, 지진은 그러한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시인은 인간이 가진 내적 불안정성을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나를 / 그저 자유인인 채로 남겨놓고 / 신사답게 물러가길 바란다"에서 화자는 내면의 자유로움을 갈망한다. '신사답게'라는 표현은 고통 없는 우아한 이별을 암시하며,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계절의 변화를 넘어 인간이 평온과 자유를 찾고자 하는 이상을 나타낸다.

마지막 행 "곧 미련 없이 / 내 앞에서 물러가버릴 / 2024년의 가을이여"는 시적 화자의 결연함과 비장함을 담고 있다. 가을은 인생의 한 시기를 상징하며, 미련 없이 떠나기를 바라는 것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과 다짐을 내포한다.

이 시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인간 내면의 갈등과 소망을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다. 주광일 시인은 감각적인 이미지와 절제된 언어를 통해 인간의 불안을 시각적으로 그려내며, 독자로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시 속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화자의 내면 갈등도 심화되지만, 끝내 그 안에서 평온과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은 독자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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