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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09. 2024

마지막 생일 ㅡ 장 화백

청람 김왕식








                             마지막 생일


                                                 장 화백




나는
나에게 남겨진 시간을 향해
가고 있으며,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함께 해줄 수 없는
시간에,
평생을 함께했던
나의 소중한 사람이,
홀로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는 것만이
내게 남아 있는
유일한
가슴 아픈 일이다.

아내가 말한다.
친구 같이
애인으로
평생을 함께해 준
소중한 당신에게
애타게 보고 싶어
전화를 하고 싶을 때,
받아줄 당신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다른 도리가 없어
야위고
메마른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 준다.

몇 해전 걸었던
성균관대 명륜당의 은행나무.
우리가 백 년을
약속했던....

아내의 상차림은
변함없이 따뜻하고
평안하다.

마지막 생일날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 화백의 시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애절함과 아내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시의 첫 부분은 남겨진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남겨진 시간’은 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화자의 고뇌와 불안감을 암시한다. ‘가슴 아픈 일’이라는 표현은 이 시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응축한 듯한 여운을 남기며,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부재 속에서 홀로 남겨질 아내에 대한 염려임을 드러낸다.

이어서 등장하는 아내의 독백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두려움을 담고 있다. ‘애타게 보고 싶어 전화를 하고 싶을 때, 받아줄 당신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라는 절절한 질문 속에는, 생애를 함께한 배우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실의 두려움과 고독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로 인해 독자는 부부가 공유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며, 서로에 대한 의존과 유대가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다.

그다음, 시인은 ‘야위고 메마른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준다’는 표현을 통해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를 드러낸다. ‘야위고 메마른’이라는 형용사는 아내가 겪고 있을 육체적, 정서적 고통을 상징하며, 그런 아내를 떠나야 하는 화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또한 시 속에서 회상되는 ‘성균관대 명륜당의 은행나무’에서 성대는 그의 아내가 다녔던 모교로서 두 사람의 백 년을 약속한 장소이다. 이제는 아내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것을 상상하는 슬픔이 스며들어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두 사람의 약속과 기억이 남겨진 장소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끝으로, 시인의 생일날에 아내가 마련한 ‘따뜻하고 평안한 상차림’은 아내가 화자에게 주는 마지막 애정이자 배려를 상징한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시는 서로에게 주는 위로와 사랑이 일상 속에 깃들어 있음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 어떤 표현보다도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이 장면은 이별의 순간마저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는 아내의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시는 한편으로 죽음의 슬픔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담담하게 준비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인의 자세는 오랜 세월 함께했던 아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며, 독자에게 죽음 앞에서도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일깨운다.



내게 남은 시간은
당신에게 남을 빈자리여,
홀로 두고 떠날 이 길 위에서
마음만이 저린다네.

전화 걸어도 받을 이 없는
그날이 두렵다는 당신,
메마른 손을 잡아주며
그저 가만히, 잠시 머물 뿐.

성균관대 은행나무 아래
우리 백 년의 약속은
기억의 잎새로 남겠지요.

마지막 생일상, 따뜻하고 평안한
당신의 손길, 사랑의 징표라네.
내가 떠난 후에도
그대 마음은 여전하길.





존경하는 장화백님께,





안녕하세요. 장화백님의 시를 읽고 나서 감히 펜을 들었습니다. 이번 생일을 맞이하시며 쓰신 이 시가 제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겨, 어쩌면 이 편지 한 장으로 그 마음의 여운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장화백님께서는 시에서 남겨질 시간과 떠나가야 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담아내셨습니다.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걱정이 한 구절 한 구절을 타고 흐르며, 독자의 마음에까지 묵직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시를 읽는 내내 장화백님께서 견디고 계신 현실과 그 안에서의 따뜻한 사랑이 가슴속 깊이 전해졌습니다.

"내가 함께 해줄 수 없는 시간에, 평생을 함께했던 나의 소중한 사람이 혼자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는 것만이 내게 남아 있는 유일한 가슴 아픈 일이다." 이 한 구절은 떠나보내는 자의 아픔이 아닌, 떠나는 자의 애틋함을 절절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은 단순한 이별의 슬픔을 넘어, 그 깊이와 진정성을 그대로 느끼게 합니다. 장화백님께서는 이처럼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내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며 품어주시니, 그 사랑과 헌신이 얼마나 깊고 진실한지 알 수 있습니다.

장화백님께서 돌아보는 성균관대 명륜당의 은행나무, 그 아래에서 나누신 백 년의 약속은 단순한 추억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분이 함께 만들어온 시간의 무게이자, 남은 시간 동안 아내의 곁에서 지켜주고 싶은 소망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합니다. 백 년을 약속한 그 장소는 이제 아내께서 화백님의 기억을 품고 계실 소중한 마음의 고향이 될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이별을 가져와도, 두 분의 기억은 언제나 그 은행나무 아래서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생일을 맞이하시며 아내께서 차려주신 상차림이 여전히 따뜻하고 평안한 장면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위로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장화백님께서 아내의 손길 속에서 평온을 느끼시는 모습은, 살아가시는 동안 쌓아 오신 사랑과 신뢰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손길과 배려가 두 분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표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많은 사람들이 두 분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시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그 무게를 감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장화백님께서 삶을 대하는 태도와 아내를 향한 애정은 제게 큰 교훈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가운데 오직 아내를 두고 떠나야 하는 슬픔만이 가슴에 남으셨다는 말씀은, 진정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내의 행복을 바라며, 혼자 남겨질 아내를 염려하시는 그 마음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숭고한 마음입니다.

장화백님, 비록 제가 멀리서 작은 위로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드리지만, 이 작은 글이 닿아,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랍니다. 아내와 함께 나누신 순간들은 그 어떤 것도 흐트러지지 않고, 장화백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한층 빛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생일이라 말씀하셨지만, 저는 이 순간이 두 분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은 시간 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소중한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 가시길 바라며, 두 분께 평안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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