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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하얀 밤

김왕식









눈 오는 하얀 밤




시인 임보선






밖은 눈이 한창이다

적막강산에 오는 눈
얼마나 더 쌓이고
얼마나 더 무너져야
절정에 이를까

눈 오는 소리
먼 여정의 짐을 이고
가슴
가슴 무너지는 소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임보선 시인은 섬세한 언어로 삶의 본질과 자연의 현상을 탐구하며, 그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색해 왔다. 그의 시는 일상의 단순한 장면 속에 깊은 철학적 사유와 미적 가치를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감정의 정수를 포착한다. 이 시 또한 하얀 눈 내리는 밤을 배경으로 삶의 무게와 소멸의 순간을 정교하게 표현한다.

"밖은 눈이 한창이다"

첫 행은 단순한 서술로 시작되지만, 이 짧은 문장이 전체 시의 분위기를 설정한다. '한창'이라는 표현은 눈 내림의 역동성을 암시하며, 고요 속에서도 역동적 움직임이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는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의 작은 존재감을 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적막강산에 오는 눈"

'적막강산'이라는 표현은 눈 내리는 고요한 풍경을 통해 고독과 정적을 강조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연결하며, 외로운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눈이 단순히 오는 것이 아니라 적막한 대지 위에 내린다는 점은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결핍의 공간을 형상화한다.

"얼마나 더 쌓이고 /
얼마나 더 무너져야 /
절정에 이를까"

이 부분은 시적 화자의 내면적 질문이 드러나는 곳으로, 삶의 고통과 무게가 절정에 도달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쌓이고'와 '무너져야'라는 상반된 동작이 반복되며, 삶의 역설적 진리를 표현한다. 특히 '절정'이라는 단어는 궁극적인 완성을 향한 열망과 동시에 소멸의 순간을 암시한다.

"눈 오는 소리"

이 행은 시각적 이미지에서 청각적 이미지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감각적 경험을 확장시킨다. 눈 내림의 소리는 고요함 속에서 무언가 서서히 사라지는 느낌을 전달한다.

"먼 여정의 짐을 이고 /
가슴 /
가슴 무너지는 소리"

'먼 여정'은 인간의 삶을 은유하며, '짐'은 삶의 무게와 고난을 상징한다. 이 구절에서 '가슴'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무너짐의 심리적 파급력을 강조한다. 이는 눈 내리는 풍경을 통해 개인의 내면적 고통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임보선의 이 시는 눈 내림이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 고통과 소멸을 형상화한다. 단순한 이미지의 반복과 역설적 표현을 통해 삶의 고통과 무게를 절정의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얼마나 더 쌓이고 얼마나 더 무너져야'라는 반복적인 문장 구조가 다소 예측 가능해 보일 수 있다.
이 부분에 더 참신한 이미지나 표현을 추가한다면 시의 독창성이 한층 더 부각될 것이다.

시의 감성적 측면에서는 눈 내림의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풍경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독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또한,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 존재의 고독과 무게를 드러내며, 삶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독려한다.
이처럼 이 시는 자연과 인간, 고독과 소멸을 잇는 다리를 세우며,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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