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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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김치
시인 박진우
배추는 하얀 속살을 펼쳐
어머니 손길에 몸을 내준다
"내가 녹아야 비로소 너를
품을 수 있겠구나 "
파도처럼 밀리는 고단함
속에서도 어머니
마음은 바다
배추는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무는 땅에 굳건히
뿌리내린
버팀목 아버지
가족의 무게 꿋꿋이 견디며
" 이 몸이 칼에 쓰러져 ,
너희 삶에 뿌리가 되리라"
몸은 썰어지고 상처를
남기는 칼날에도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 본향은 땅
고춧가루 시어미의 뜨겁고
매운 눈물 맛을 더해
마늘 생강 젓갈의 향기는
각기 달라도
저마다 자식들의 삶을
간으로 맞추니
"우리가 함께할 때 맛은
깊어지고 삶은 풍요롭다"
마침내 배추와 무는 양념의 폭풍 속에서
서로를 껴안는다
다양한 맛이 시간에 스며들어
하나의 맛을 낸 손맛
겨울의 긴 숨결 속에
김치는 속삭인다
"그 짠 바다와 단단한 땅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예술"
온 세상 밥상을 물들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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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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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시인은 자연과 일상 속에서 발견한 인간적 가치를 시어로 빚어내는 시인이다. 그의 시 세계는 단순한 풍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삶의 본질과 가족애, 희생의 아름다움을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특히, 시 '김장 김치'는 김치라는 한국 전통음식을 통해 가족의 유대와 희생, 그리고 공동체의 조화로운 삶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 시는 재료의 변화를 통해 완성된 김치를 삶의 은유로 삼아, 각기 다른 구성원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려내었다.
"배추는 하얀 속살을 펼쳐 / 어머니 손길에 몸을 내준다"
배추의 이미지는 순수하고도 희생적인 어머니를 상징한다. 하얀 속살을 펼치는 모습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헌신을 보여준다. 이는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몸을 내준다"는 표현은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는 동시에 가족의 안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의 역할을 함축하고 있다.
"파도처럼 밀리는 고단함 속에서도 / 어머니 마음은 바다"
파도와 바다라는 이미지를 통해 어머니의 삶이 고단함 속에서도 포용적이고 넉넉함을 잃지 않는 점을 보여준다. 파도는 일상의 수고와 고난을, 바다는 이를 넘어서는 어머니의 넓은 마음을 상징하며 대조적 이미지로 감동을 배가한다.
"무는 땅에 굳건히 뿌리내린 / 버팀목 아버지"
무는 아버지의 역할과 희생을 상징한다. 땅에 뿌리내린 모습은 가족의 기반이 되어주는 든든한 존재를 보여준다. 이는 가족의 중심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희생적 역할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 몸이 칼에 쓰러져, 너희 삶에 뿌리가 되리라"
이 대목은 아버지의 헌신과 희생을 강조한다. "칼에 쓰러져"는 스스로의 고통을 감내하며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희생정신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본향이 땅이라는 표현은 아버지의 삶이 가족을 위한 토대가 되었음을 시사하며, 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적으로 전달한다.
"고춧가루 시어미의 뜨겁고 매운 눈물 맛을 더해"
고춧가루는 시어머니의 역할을 상징하며, 가정 내에서의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조화를 이루는 지혜를 표현한다. 이 표현은 고유의 한국적 정서를 반영하면서 가족 구성원 각각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우리가 함께할 때 맛은 깊어지고 삶은 풍요롭다"
재료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이루는 모습은 가족 구성원이 조화를 이루며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시의 핵심 주제인 조화와 협력, 그리고 공동체적 가치와 연결된다.
"김치는 속삭인다 / '그 짠 바다와 단단한 땅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예술'"
바다와 땅이 조화를 이루어 김치를 완성하듯, 가족의 유대와 희생을 통해 삶이 예술로 승화됨을 함축적으로 나타냈다. 이 대목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미적 감각을 드러낸다.
김장 김치는 김치를 통해 가족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조화를 형상화한 시이다. 각 재료가 고유의 역할을 하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삶의 본질을 설득력 있게 비유한다. 시어는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세밀하게 다듬어졌고, 시적 이미지와 은유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깊은 울림을 준다.
다만, "파도처럼 밀리는 고단함"과 같은 표현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듬었다면 더욱 선명한 이미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 전체의 유기적 흐름과 주제 의식은 매우 강렬하며, 박진우 시인의 깊은 통찰과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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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작가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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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박진우 시인님.
먼저, 시인님의 시 ‘김장 김치’를 읽고 느낀 감동을 이렇게 편지로 전할 수 있게 되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 한 편 속에 담긴 따뜻함과 깊은 메시지가 제 마음속에 오랜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 시를 읽는 동안, 저는 김장이라는 한국 고유의 전통이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가족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공동체의 조화를 상징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 속에서 배추와 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으로 생생히 살아 움직였습니다. “배추는 하얀 속살을 펼쳐 어머니 손길에 몸을 내준다”라는 구절에서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무는 땅에 굳건히 뿌리내린 버팀목 아버지”라는 표현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무게를 묵직하게 전달했습니다.
특히, “이 몸이 칼에 쓰러져, 너희 삶에 뿌리가 되리라”라는 대목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삶의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가족을 지켜내는 부모님 세대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같은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맛을 완성해 가듯, 각기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하나의 유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시 속에서 아름답게 형상화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김치는 속삭인다 / 그 짠 바다와 단단한 땅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예술”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가족의 조화로움을 철학적으로 조명하는 시인의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문장이 전달하는 의미는 독자로 하여금 삶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더 깊이 사유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인님의 시는 비단 김치를 소재로 한 이야기뿐 아니라, 오늘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조화로운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 시를 통해, 저는 잠시 멈춰 서서 일상 속에서 잊기 쉬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시인님의 시가 더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하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시인님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깊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따뜻한 시어로 많은 이들에게 빛과 희망을 전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