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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손길

김왕식









소박한 손길





작은 마을에 소박한 이웃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알고 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그는 언제나 남을 돕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는 재산이 많은 부자들이 많지만, 이 사람은 마음이 넉넉한 진정한 부자였다.

그의 하루는 늘 이웃들을 살피는 일로 시작되었다. 햇빛이 아침 안개를 걷어내면, 그는 작은 텃밭으로 나가 무와 배추를 뽑았다. 몇 해 전부터 겨울이 오기 전이면 늘 김장을 담가 독거노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노인들의 집에서 김치 냄새가 풍기면, 그들은 "또 그 사람이구나"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때로는 자신의 손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정작 자신의 삶은 단출했다. 하루 식사는 허름한 밥상 위의 소찬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옷은 오래된 남루한 옷가지뿐이었다. 누군가 "왜 이렇게 검소하게 사느냐"라고 물으면 그는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저보다 더 필요한 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의 말은 그저 겸손이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삶의 철학이었다.

일이 벌어졌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한 노인을 돌보다가 실수로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낙상의 충격으로 그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비록 몸이 불편한 상태였지만, 그의 걱정은 오히려 자신을 돌보는 일보다 자신이 돌보던 노인들에게 향했다. “내가 이러고 있으니 저분들께 누가 도움을 드릴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병실에서도 그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이 아니었다.

병문안을 온 이웃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숙연해졌다. 그는 남들에게 도움을 베풀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픔이나 고단함을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성자(聖者)란 저런 분이 아닐까.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사는 사람.”

그의 병문안을 다녀온 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김장을 담가 노인들에게 나눠 주었고, 누군가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의 삶은 단지 자신이 돕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마저도 선행에 동참하게 만드는 귀감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부’라는 말을 흔히 물질적 풍요로 치환하곤 한다. 그러나 이 사람의 삶은 ‘부’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할지라도, 그는 그 누구보다 풍요롭고 넉넉한 삶을 살았다. 그의 손길은 단순히 도움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나눔’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삶,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종종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웃의 삶은 반대의 진리를 보여준다. 그는 많이 소유하기보다, 있는 것을 나누는 데서 삶의 만족과 기쁨을 찾았다. 그의 작은 텃밭에서 시작된 나눔은 독거노인의 식탁을 채우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입원 중에도 그가 흘린 눈물은 자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이 자신으로 인해 흔들릴까 걱정하는 눈물이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현대인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 그의 삶은 ‘돌봄’과 ‘나눔’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증명하는 일임을 일깨워 준다.

그가 병상에서 회복 중인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 그의 삶은 단지 하나의 선행으로 그치지 않고, 공동체 전체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가 일궈 놓은 나눔의 씨앗은 점점 더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우리는 종종 영웅이나 성자를 먼 곳에서 찾으려 하지만, 진정한 영웅은 바로 우리의 곁에 있다. 자신의 것을 나누고, 남을 돕는 일을 기꺼이 하며, 심지어 고통 속에서도 남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진 이웃. 그는 누구보다 고귀한 삶을 살고 있는 진정한 부자이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귀감이다. 그의 이야기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삶은 나누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풍요롭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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