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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26. 2024

만둣집 주인

김왕식








                             만둣집 주인






세 사람이 찌개집에 갔다.
따뜻한 국물에 푸짐한 내용물까지, 세 사람은 맛있게 찌개를 즐겼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보니, 약간 남은 찌개가 눈에 밟혔다.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싸갔으면 좋겠는 걸"
"뭘 그걸 싸가? 먹던 걸 그렇게까지 해야 해? 부족하면 새로 한 그릇 시키면 되잖아."
"물론 시킬 수야 있지. 그런데 아깝잖아."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가운데 있던 친구가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요, 남은 찌개 싸 주실 수 있나요?"

종업원은 말없이 냄비를 가져가더니, 비닐봉지에 대충 말아 묶어 퉁명스레 건넸다.
"여기요."

그 태도에 말은 없었지만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돈을 지불하고 요청한 일인데도 이런 대우라니. 그 찌개를 싸고 싶어 했던 친구는 투덜댔다.
"그러게, 괜히 추잡하게 싸달랬네."

정말 추잡해서였을까?

아니면 저 종업원의 성의 없는 태도가 더 마음에 걸린 걸까?



몇 년 전,
비슷한 상황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두 분을 모시고 만둣집에 갔다. 삼인 분을 시켜 맛있게 먹었지만, 마지막 하나는 남았다.

어르신 중 한 분이 말했다.
"이거 참 맛있는데, 하나 남긴 게 아깝다. 누가 먹지 그래?"

서로 양보하느라 끝내 먹지 않았다. 어쩌면 예의였을지도, 아니면 배가 너무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요, 이 만두 하나 포장해 주실 수 있나요?"

 주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싸드리겠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길, 주인이 직접 포장된 만두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포장이 지나치게 크다고 느낄 만큼 정성스러웠다. 어르신께서는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아이고, 하나 남은 거 싸달랬더니 이렇게까지 과하게 하다니. 그래도 참 마음씨가 좋구먼."

집에 도착해 두 분을 모셔다 드린 후 전화가 왔다.
"김 선생, 아까 만두 포장한 거 말이야."
"네, 과하게 포장하셨더라고요."
"근데 말이야, 그 안에 만두가 다섯 개나 들어 있었어."

순간 놀랐다.
하나 남은 걸 부탁했을 뿐인데, 주인은 네 개를 더 넣어주었다. 심지어 손편지도 들어 있었다.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한 마디가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집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맛집인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오늘 찌개를 봉지에 대충 말아 건넨 종업원의 모습과 몇 년 전, 정성 가득한 포장을 건네던 장면이 오버랩됐다.
감동은 결코 거창한 데서 오는 게 아니다.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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