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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는 입보다 위에 있다

김왕식









귀는 입보다 위에 있다







돌이켜 보면
내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서는 종종 소란스러운 회의가 열리곤 했다. 각자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데 급급했다. 회의는 늘 고성과 다툼으로 끝나기 일쑤였고, 결론조차 나지 않은 채 흩어지곤 했다. 그러니 아이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불안하고 어수선하게만 보였다.

어른들 사이의 갈등은 마을 전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서로 마음을 열지 않고 대화 대신 다툼을 택하니, 작은 문제도 해결되지 못하고 점점 더 커져갔다. 마을 곳곳에 묵은 감정과 불신이 쌓여만 갔다. 누구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했다.

그때 마을로 한 분이 내려오셨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교장으로 재직하시다 퇴임한 어른이었다. 인격과 지혜로 이름난 분이었고, 마을 사람들 역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마을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한참 지켜보더니 차분히 말씀하셨다.

“여러분, 오늘부터는 서로 다투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먼저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경청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풀리지 않을 겁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의 제안을 낯설어하며 의아해했지만, 워낙 갈등이 심각했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듣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며 반신반의하는 이도 있었지만, 일단 그의 말을 따라보기로 했다.

첫 회의는 이전과는 달리 조용히 시작되었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모두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했다. 익숙하지 않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처음엔 어색함을 느꼈지만, 점차 대화의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논둑이 무너져 수확량이 줄었다며 불만을 털어놓는 농부의 이야기를 들은 옆집 농부는 조심스레 말했다.

“네 논으로 물이 흘러가도록 둑이 망가졌더군. 내가 고쳐보려 했는데 너에게 말할 틈이 없었지.”

그렇게 작은 대화가 시작되었고, 두 사람은 함께 둑을 고치기로 했다. 단순한 경청이 오래된 불신을 녹이는 계기가 된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청은 마을의 새로운 규범이 되었다. 서로를 비난하던 대신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더 이상 회의는 다툼으로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의 장이 되었다.

대장장이였던 달수 아저씨는 어느 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늘 내 방식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새로운 해결책이 보이더군. 그들의 지혜도 참 대단했어.”

달수 아저씨는 공동 작업장을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이는 마을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작업장은 이후 마을 사람들의 만남과 협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몇 달이 지나자 마을은 완전히 달라졌다. 다툼 대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자리 잡았고,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퇴임 교장 어른은 마을 사람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기셨다.

“귀가 입보다 위에 있는 이유를 기억하세요. 듣기가 말하기보다 중요하답니다. 듣기를 배우면 혼란은 스스로 정리되기 마련입니다.”

그의 말씀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날 이후 마을은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경청을 통해 얻은 평화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연대로 이어졌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종종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느라 다른 이의 이야기를 놓치곤 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혹은 사회 속에서 말하기보다 듣기를 우선시해야 할 때가 많다.

한 회사에서 팀장이 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하며 자신의 지시만 고집하던 때가 있었다. 팀워크는 깨지고 성과는 저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은 결심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결과는 놀라웠다. 직원들은 자신의 생각이 존중받는다는 사실에 동기부여를 받았고, 팀워크는 극적으로 향상되었다.

마을에서 일어난 변화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다.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열고 관계를 회복하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열쇠다.

귀가 입보다 위에 있는 이유를 기억하자. 듣기는 혼란을 정리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첫걸음이다. 경청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든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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