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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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한 장의 힘
김왕식
삶은 때로 가혹하다.
피할 수 없는 고난의 순간들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때로는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 고단함 속에서도, 작은 글귀 하나가 주는 따뜻한 온기와 위로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것이 바로 쪽지 한 장의 힘이다.
김소운 작가의 옴니버스식 구성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서 소개된
"왕후王后의 밥, 걸인乞人의 찬饌"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말 이상의 울림을 준다.
이는 한 끼의 밥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마음을 채우는 행위로 변모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거창한 것이 아닐지라도, 작고 소박한 진심이 전달될 때 그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아내가 온종일 시부모를 모시고 아이들을 돌보며 지쳐 있을 때, 남편이 그녀의 머리맡에 남긴 짧은 쪽지 한 장.
"여보 미안해, 사랑해."
이 다섯 글자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하고 소박했지만, 아내의 가슴 깊은 곳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그 한 줄의 글귀에서 남편의 미안함과 진심을 느꼈고,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피로와 억눌렸던 감정을 쏟아냈다.
쪽지 한 장은 말로 전할 수 없었던 감정을 전달하고, 아내에게 다시 한 번 가정을 위해 견딜 힘을 선물했다.
또 다른 장면은 더욱 절박하다.
남편이 사업 실패로 인해 모든 희망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던 순간, 아내는 그의 지갑에 작은 쪽지를 남겼다.
"여보, 따뜻한 국밥 꼭 챙기세요. 당신이 내 남편이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힘내요!"
이 쪽지와 함께 그녀는 쌈짓돈을 넣어주었다. 이 짧은 글귀와 작은 배려는 그의 마음에 생명줄처럼 닿았다.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사랑해 주는 아내의 존재는 그가 다시 희망을 찾고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쪽지 한 장은 가벼운 종이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은 삶의 무게를 바꿀 만큼 강력하다.
때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 준다.
쪽지에 담긴 글귀는 단순히 문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 믿음, 격려라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간과하는 소중한 관계와 마음을 상기시킨다.
일상에서 우리는 늘 서로를 당연시하며 살아간다. 아내의 희생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남편의 노력에 무감각해질 때도 많다.
"여보 미안해, 사랑해"와 같은 간단한 말이 주는 울림은,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계기가 된다. 쪽지 한 장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다리가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쪽지와 같은 순간들을 마주한다. 때로는 지쳐 있는 동료의 책상 위에 남겨진 메모가, 가방 속에 몰래 넣어진 응원의 메시지가, 그리고 침대 머리맡의 짧은 글귀가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이런 작은 마음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쪽지 한 장의 힘은 크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생명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준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짧은 쪽지 한 장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그 한 장의 쪽지가 누군가의 삶에 작은 기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희망은 이렇게 작고 소박한 순간에서 태어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