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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근과 칠득이

김왕식







달근과 칠득이




청람






해가 서쪽 하늘로 기울고, 시골길에 긴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람은 살랑이고,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달근이는 허름한 정자 아래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손으로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먼 산을 바라본다. 그 옆에서 칠득이가 막걸리 한 모금을 넘기더니, 달근이를 슬쩍 쳐다본다.

“뭐꼬? 한숨을 그리 푹푹 내쉬고 있노?”

“아이고, 칠득아… 세상이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아이가. 사람한테 치이고, 일이 틀어지고, 믿었던 사람마저 떠나버리니, 이젠 진짜 모르겠다.”

칠득이는 묵묵히 달근이의 말을 듣는다. 저녁바람이 살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라면, 쉬었다 가야지.”
칠득이가 막걸리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쉰다고 해결이 되나?”

“안 쉬면 더 망가진다. 몸도 마음도 말이다.”

칠득이는 달근이의 등을 두드리더니, 슬며시 말을 이었다.

“찜질방이나 가서 땀 한 바가지 흘려라. 뜨끈한 방에 들어가 누우면, 몸이 먼저 풀어진다. 그리고 어릴 때 좋아하던 떡볶이나 한 그릇 해라. 어묵 국물도 한 사발 들이켜고.”

달근이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칠득이는 다시 입을 뗀다.

“극장에도 가보자. 웃기는 영화 하나 골라서, 그냥 미친 듯이 웃어보는 거다. 그게 다 내 몸 챙기는 거다.”

달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칠득이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다 미뤄두고, 한숨만 쉬고 있었으니.

“그래도 안 되면,”
칠득이가 말을 이었다.
“훌쩍 떠나봐라. 경포대 바닷가나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걷든.
혼자라도 가보는 기라.”

달근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멀리 기차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하면 좀 나아질까.”

“나아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도해라.”

달근이는 눈을 들어 칠득이를 바라보았다.

“기도?”

“그래. 종교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너 자신을 위해, 너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라.”

“…….”

“그리고 용서할 수 있게 해 달라고도 빌어라. 그래야 산다. 그래야 또 살아갈 수 있는 기다.”

달근이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칠득이의 말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별 하나가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

칠득이가 막걸리 병을 들며 말했다.

“자, 이제 그만 일어나자. 포장마차 가서 우동 한 그릇 하자!”

달근이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딘가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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