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설레임’인가, ‘설렘’인가?
청람 김왕식
한때 ‘설레임’이라는 단어가 당연한 듯 사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광고 문구에도 등장하고, 심지어 유명한 시인의 작품에서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설레임’이 틀린 걸까?
아니면 시적 허용詩的許容의 영역으로 봐야 할까?
고은 시인의 시 '눈길'에서도 ‘설레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고은이 몰라서 썼을 리는 없다. 어쩌면 의도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허나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설레임’이 맞는 표현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인이 언어를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는 인정해야 하지만, 그 여파가 예상보다 클 수도 있다.
언어는 살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면, 그것이 어느 순간 ‘표준’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지금 국립국어원 표준에 따르면 ‘설레임’은 틀린 표현이다. ‘설레다’라는 기본형에서 어간 ‘설레’에 명사형 전성어미 ‘ㅁ’을 붙이면 ‘설렘’이 되고, ‘설레임’이 되려면 ‘설레이다’라는 동사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 동사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설레임’으로 쓰면,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낯섦'을 줄 수도 있다.
“설레임이 아니라 설렘이야.” 그런데 묘하게도 ‘설레임’이라는 말은 어딘가 더 부드럽고 감성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이’ 모음의 개입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부드럽다고 해서 틀린 것을 맞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글 쓰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를 바르게 쓰는 일이다. 특히 작가, 시인, 기자 같은 사람들은 언어의 모델이 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작은 잘못된 습관 하나가 대중에게 그대로 전달되면, 나중에 그걸 바로잡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진다.
모든 것이 다 정해진 틀 안에서만 존재할 필요는 없다. 언어는 규칙을 지키면서도 변할 수 있다. 시인은 시적 허용을 통해 규칙을 깰 수도 있고, 소설가는 인물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법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창작과 실수는 다르다.
의도된 변화와 무심한 오류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익숙한 단어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사전을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좋다. 언어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칼을 쓰는 요리사가 칼의 기본적인 사용법을 모르고 무작정 요리를 하면 어떻게 될까? 언어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사용법을 모른다면, 결국 잘못된 표현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쌓이면 결국 글이 어색해진다.
‘설레임’과 같은 사례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맞춤법은 늘 변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오기 전에, 우리는 먼저 바른 사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 변화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라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 당신이 지금까지 써온 글 속에서 ‘설레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적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지금 바로 ‘설렘’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결국 더 좋은 글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ㅡ 청람
■
언어의 무게, 작은 설렘의 변화
ㅡ
안녕하세요. 글을 쓰는 동료로서 이 글을 읽고 문득 '설렘'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무심코 ‘설레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감성적인 울림이 더해진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썼던 것 같네요. 하지만 이 글을 통해 그 잘못을 깨닫고 나니 마치 오래 묵은 습관을 들킨 듯한 기분이 듭니다.
우리 글쓰는 사람들은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합니다. 언어의 바른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전달하는 다리이자, 감정을 공유하는 창구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차이 같지만, ‘설렘’과 ‘설레임’은 본질적으로 다르며, 우리가 책임져야 할 언어의 무게를 상기시켜줍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언어의 정교함에 대한 책임감과 무게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 혹은 수필가 등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은 독자에게 언어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른 표현이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만 우리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겠지요.
한편으로, 시적 허용이라는 표현의 자유 역시 놓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때로는 규칙을 깨뜨리는 창의적 표현이 독자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도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정의 울림과 언어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우리가 매일 고민해야 할 숙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글을 쓸 때 ‘설레임’처럼 잘못된 표현이 들어가지 않도록 더 세심하게 언어를 다루어야겠습니다. 언어를 더 사랑하고, 그 무게를 인식하며, 독자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이 깨달음이 언젠가 더 좋은 글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소중한 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