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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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 나무의 침묵 속에서 배운 사랑
청람 김왕식
그 나무는 처음부터 말이 없었다. 아이가 와도 웃지 않았고, 떠나도 울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잎을, 가지를, 줄기를, 심지어는 그 존재의 자리까지도. 누군가는 그 나무를 어리석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가장 많은 말은 침묵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쉘 실버스타인의 나무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나무는 그저 놀이터였다. 달콤한 열매를 주는 손이었고, 쉬어갈 그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아이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나무는 매번 묻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자신의 일부를 내주었다. 나무는 자존심도 없이 스스로를 줄이고 줄이며 한 인간의 삶을 떠받쳤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의 뼈를 깎아 살림을 일구듯, 나무는 기꺼이 스스로를 깎아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계산도, 조건도, 대가도 없는 ‘주기’라면, 이 나무는 사랑 그 자체다. 이 나무는 사랑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기다림으로, 침묵으로, 그리고 비어감으로 사랑을 실천한다. 메마른 줄기 하나 남기고도 "행복했단다" 말할 수 있었던 건, 주는 기쁨이 가장 충만한 기쁨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장하며 무언가를 얻는 법을 배운다. 더 나은 옷, 더 높은 지위, 더 크고 편리한 집.
나무는 그 반대의 길을 걷는다. 가지를 잘라주고, 몸통을 내어주고, 끝내는 밑동만 남아 누군가의 쉼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무는 '사랑은 줄수록 자라는 것'임을 몸으로 증명한다.
쉘 실버스타인의 그림책은 단순하지만, 그 울림은 깊다. 주는 사랑이 얼마나 큰지, 말없는 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나무의 침묵 속에서 배운다. 그 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지만, 그 자리에서 나지막이 속삭인다. ‘괜찮단다. 네가 다시 와주어서, 나는 또 행복하단다.’
나무는 비록 몸은 작아졌을지라도, 마음만큼은 더 넓어진 존재다. 결국 사랑이란, 비워내는 것에서 피어나는 가장 온전한 꽃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