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구 시인의 '변기의 독백'을 읽고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 전홍구 시인의 디카시












변기의 독백


시인 전홍구




당신이 저를 소중히 다루시면
제가 본 것을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변기 올림-








전홍구 시인의 '변기의 독백'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전홍구 시인의 디카시 '변기의 독백'은 일상 속 사물을 통해 인간 내면의 윤리와 존재의식을 조명하는 기발하고도 철학적인 작품이다. 언뜻 보면 유머러스한 농담 같지만, 시인은 이 짧은 시구를 통해 사회적 관계와 도덕적 자각, 그리고 인간 본성의 이면을 날카롭게 들춰낸다.
‘당신이 저를 소중히 다루시면 / 제가 본 것을 /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문구를 넘어,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긴장과 신뢰를 은유한다.
비밀은 언제나 누군가의 무례를 기억하는 공간에 존재하고, 이 시에서 그 공간은 다름 아닌 소변기이다.

전홍구 시인은 한국 현대 디카시계의 중심에 있다. 성실과 열정이라는 두 기둥 위에 창작의 일상을 쌓아 올려왔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전국을 누비며,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보는 자’의 윤리를 넘어, ‘기록하는 자’의 사명을 실천하는 현장의 시인 그 자체다.
그에게 있어 사물은 단지 시선을 통과하는 물체가 아니라, 이야기를 기다리는 존재이며, 시인은 그 속삭임을 귀담아듣는 사람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 미의식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소변기라는 위생 도구가 시인의 눈앞에 선 ‘증인’이 되고, 그 증인이 인간의 태도에 따라 ‘말하느냐, 침묵하느냐’를 결정하는 설정은 곧 윤리의 거울이 된다. 시인은 사물을 의인화하는 능란한 솜씨로 도구에 인격을 부여하고, 우리 모두가 무심코 지나치는 공간을 성찰의 무대로 전환시킨다.
이 시는 어떤 공간에도 시의 씨앗이 있고, 어떤 도구에도 인간의 거울이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에는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다. 정제되지 않은 유머가 아니라, 세상을 꿰뚫는 유쾌한 진실의 언어이다.
시인은 말한다. “소중히 다루라.” 그것은 단지 변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한 경계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은유적 훈계다. ‘비밀’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인간사에 무게를 싣는 말이며, 비밀을 지키는 조건이 ‘존중’이라는 점에서 시는 인간 윤리의 기저를 짚는다.

전홍구 시인은 언제나 길 위에 있고, 세상 구석구석에서 시를 발견해 내는 눈을 지녔다. 그는 “보는 시인”이 아니라, “보게 만드는 시인”이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변기를 통해, 독자로 스스로의 언행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이 시인의 힘이고, 예술의 참된 존재 이유다. 기발함과 성찰, 해학과 철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디카시는 전홍구 시인의 미학적 태도와 문학적 깊이를 농축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짧은 농담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비추는 ‘문명의 거울’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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