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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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놓고 간 것
시인 변희자
세차게 내리꽂는 비
이른 아침을 적신다
좁은 처마 밑
몸과 가방이 다 젖은
어린 남자아이
비를 피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학교 가는 길이구나
“우산이 없어서요”
“같이 가자”
착, 붙어서는 아이
“어디 사니”
“얕은 산 아래요”
그 아이가 서 있던
자리에는
우산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비에 흠뻑 젖더라도
낯선 우산 외면한
그 작은 가슴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작은 마음 하나 남기고
교실로 간 아이
그 고운 숨결이
선물로 온 아침이다
■
작은 숨결이 빛으로 남는 아침
― 변희자 시인의 '그 아이가 놓고 간 것'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시인의 '그 아이가 놓고 간 것'은 삶의 일상에서 포착한 짧고 선한 순간을 통과해, 인간 존재의 윤리적 감수성과 내면의 순결성을 따뜻하게 노래하는 시다. 시인은 소년이 비 오는 아침에 겪는 아주 사소한 상황을 통해, 인간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선의의 본능’을 말없이 꺼내 보인다.
이 시는 그 어떤 위대한 선언보다 깊고 섬세한 울림을 남긴다. 선함이란 무엇인가, 배려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인간의 품격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그 물음들이 시 한 편에 조용히 응축돼 있다.
첫 연에서 “세차게 내리꽂는 비 / 이른 아침을 적신다”는 시작은 단순한 배경 묘사가 아니라, 일상의 시작을 가로막는 자연의 격렬함을 암시한다. 동시에 이는 삶의 고단함과 냉혹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환기하며, 그 속에서 한 아이가 서 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몸과 가방이 다 젖은 / 어린 남자아이”라는 구절은 감정적 과잉 없이 상황의 절박함을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아이의 처지에 감정 이입하게 만든다.
중앙부에서는 화자와 아이의 짧은 대화가 삽입된다. “‘우산이 없어서요’ / ‘같이 가자’” 이 짧은 문장 속에 담긴 상호작용은 배려와 신뢰의 미학을 함축한다. 타인에게 우산을 내미는 행위는 일시적인 호의이지만, 아이는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우산을 조용히 자리에 남겨두고 사라진다.
이는 단순한 예의나 미덕이 아닌, ‘자기 몫을 남기고 떠나는 존재’로서의 인간성의 발현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시의 말미, “그 아이가 서 있던 / 자리에는 / 우산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는 구절이다. 우산은 이 시에서 단순한 소지품이 아니라, 그 아이의 마음이자 무언의 윤리적 표지이다. 아이는 자신이 빌린 우산을 되돌려주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조용히 남겨둠으로써, 자기 행동의 흔적을 기록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는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놓고 간 유리 구두처럼, 존재의 선한 기미를 남기는 방식이자 시적 메타포의 정점이다.
변희자 시인의 작품 세계는 늘 ‘일상 속의 고요한 윤리’를 조명해 왔다. 그는 선과 악의 경계선보다는, 선함이 어떻게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에 흠뻑 젖더라도 / 낯선 우산 외면한 / 그 작은 가슴은 /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라는 구절에서 보이듯, 시인은 아이의 결핍과 결정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외려 담담한 어조로, 내면의 고결함이 외부 환경보다 더 중요하다는 시인의 믿음을 보여준다.
이 시는 철학자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낯선 타인을 향해 우산을 내미는 일, 그리고 받은 우산을 조용히 돌려주는 일은 서로를 향한 ‘작고도 선명한 책임’의 실천이다. 시인은 그것을 과장 없이 서술함으로써, 독자 스스로가 그 선함의 온도를 느끼게 만든다.
마지막 연에서 “그 고운 숨결이 / 선물로 온 아침이다”라는 문장은, 시인의 미의식이 가장 빛나는 구절이다. 이 시는 어떤 극적 반전이나 울림 없이 조용히 흘러가지만, 아침이라는 하루의 시작을 ‘고운 숨결’로 받아들이는 순간, 독자는 이 짧은 에피소드 안에서 삶의 새로운 윤리와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요컨대, 변희자 시인의 '그 아이가 놓고 간 것'은 단순한 ‘선행 미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존재의 투명한 마음이 어떻게 세계에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이 타인의 시선과 마음에 어떤 감동을 불러일으키는가에 대한 한 편의 깊은 서사다.
시인은 이 평범한 사건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네는 말 없는 언어, 침묵 속에 피어나는 품격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밝혀낸다.
그 아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우산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우산 아래, 우리는 어쩌면 다시 사람을 믿고 싶은 어떤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그 아침은,
시인의 말처럼 “선물로 온” 아침이다.□
□변희자 시인
*
엠마누엘리스 레비나스(이후에 프랑스어 철자법에 맞추어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됨)는 리투아니아에서 전통적인 유대교 교육을 받았다. 1923년 프랑스로 유학해 철학을 공부하다가 1928∼1929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수업을 들으면서 현상학을 연구한 뒤 1930년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레비나스는 처음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프랑스에 처음 소개한 현상학 연구자로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레비나스는 탈무드를 연구하였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생애 후반기에 영향을 끼쳤다고 인정한, 수수께끼의 인물인 "무슈 슈샤니"(Monsieur Chouchani)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후 1961년 <전체성과 무한>으로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타자성의 철학’을 개진한 철학자로 서서히 명성을 얻게 된다. 이 논문을 심사한 얀 켈레비치는 “당신이 여기 내 자리에 앉아야 했을 텐데요”라고 극찬했고, 폴 리쾨르는 그때 이미 그의 연구의 중요성을 간파했는지 <전체성과 무한>의 논문 심사가 끝난 뒤 “이제부터는 그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푸아티에 대학과 소르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구에 매진했으며, 말년으로 갈수록 점점 더 그의 철학은 중요성을 인정받게 된다. 현재는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윤리적 사유로 각광을 받으며 그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별히 폴 리쾨르와 자크 데리다는 그의 사유를 통해 자신들의 사유를 발전시켜 나간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레비나스의 철학은 프랑스 현상학의 영역뿐만 아니라 윤리학, 철학, 사회철학, 정치철학의 맥락으로까지 확장되어 유럽과 영미권을 중심으로 매우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이제 레비나스의 철학은 나, 타인, 삶의 의미와 정의 등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일자로서의 ‘나 또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자기성의 철학과 윤리가 대세를 이루는 서양철학에서뿐만 아니라, 동일자로 타자를 흡수하며 동일자 아래서 개별자를 사유하는 경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작금의 시대 상황 속에서, 타자성의 철학과 타인과의 관계로서의 정의를 추구한 그의 사유는 앞으로도 커다란 울림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