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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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악장 하나
청람
비는 내 마음의 박자를 알고,
쇼팽은 침묵보다 낮은 음으로 말을 건다.
멧새 한 마리,
숲의 어휘로 나를 다시 적는다.
커피향은 시간을 데워
어릴 적 슬픔의 주름을 펴준다.
나는 오늘, 나를 부르지 않고도
나를 찾아온 소리들을 모은다.
창밖은 젖고,
창 안은 마른다.
그 경계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 있다.
음악은 들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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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교향악
― 빗소리와 멧새, 쇼팽과 커피향으로 완성된 내면의 악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창문에 부딪는 빗방울은 악보 위에 떨어지는 쉼표처럼 시작된다.
세상은 그제야 속도를 늦춘다.
햇빛 아래서는 들리지 않던 마음의 소리가, 빗물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누군가는 이 소리를 슬픔이라 하고, 누군가는 고요라 부른다.
나는 그것을 ‘시간의 귀환’이라 부른다.
너무 오래 바깥으로 떠돌던 마음이, 비를 핑계로 다시 안으로 돌아오는 순간.
어느덧 창가엔 쇼팽의 녹턴이 흐른다.
빛 대신 어둠이 들려주는 선율.
그 피아노의 건반 위엔 눈물이 한 알씩 얹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흐르지 않는다.
멈추어 있는 감정, 말하지 않는 위로.
쇼팽은 늘 인간의 가장 깊은 고독을 건반으로 다스렸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말을 대신하고,
소리를 최소한으로 줄여 우리의 귀를 열게 했다.
나는 그 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 다닌다.
아무것도 상처 입히지 않도록,
나 자신조차 조용히 품에 안고 걸을 수 있도록.
창문을 조금 열자,
숲의 향이 들어왔다.
그 숲 어딘가에서 멧새 한 마리가 지상의 리듬을 깨우는 듯 울고 있었다.
그 소리는 결코 크지 않았다.
그 조그만 울음이, 내 안의 분주한 생각들을 잠재우기 시작했다.
멧새는 어디로 가는지도 묻지 않고, 왜 우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자리,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자신의 존재를, 숨결을, 리듬으로 확인할 뿐이다.
세상의 음악 중 가장 깊은 교향은
이처럼 자연의 안에서,
고요의 가장자리에서 들려온다.
내 안의 숲에도 지금 그 멧새가 앉았다.
눈을 감으면 나뭇잎의 진동이 느껴지고,
심장 한구석에 잊혔던 그늘이 천천히 풀린다.
그 순간, 커피향이 부엌에서 피어오른다.
그 향기는 유년의 어머니 손길을 닮았고,
비 오는 날 마루 끝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닮았다.
커피 한 잔이란, 물에 대한 기억이자
불에 대한 추억이며,
시간을 천천히 내려 마시는 예술이다.
한 모금 삼킬 때마다,
세상의 소란은 조금씩 멀어지고,
심장의 박동은 현악 2중주의 리듬으로 가라앉는다.
지금 교향악 속에 있다.
우산 없는 오후, 빗방울이 첼로처럼 울고,
피아노는 대화를 멈추고 숨을 고른다.
멧새는 호른처럼 속삭이고, 커피는 플루트처럼 퍼져간다.
쇼팽은 그 모든 음향 사이에서 단 한 음도 놓치지 않도록
내 안의 지휘자가 된다.
누구도 그 교향을 듣지 못하지만,
그건 내 안에서만 울려야 하는 비밀의 악장이기 때문이다.
그 음악은 내 심장을 고요히 적시고,
감정의 물결을 천천히 풀어 준다.
고요한 파도처럼,
누구도 다치지 않게,
나조차도 나를 위로할 수 있게.
이토록 아름다운 오후.
누군가는 그냥 비 오는 날이라 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생의 가장 은밀하고 단정한 순간이다.
그날 나는 알았다.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평화로 기억되는 시간의 형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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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다.
비의 박자, 쇼팽의 숨결, 멧새의 망설임, 커피의 향기.
모두 모여 내 안의 고요한 교향곡이 된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말보다 완전한 선율이 나를 감싸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