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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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청람 김왕식
사랑할 때는 모른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를.
마주 보는 시간 속에서는
익숙함이 감정을 덮고,
함께 있음은 당연함이 된다.
이별은
그 익숙함을 걷어낸다.
함께라는 말이
과거형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게 된다.
사랑은 기쁨이 아니다.
사랑은 결핍과 슬픔을 통과한 흔적이다.
사라지고 나서야,
텅 빈자리를 마주하고 나서야,
그 자리가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안다.
고통은 감정을 정제한다.
슬픔은
사랑을 진실하게 만든다.
그 사람이 없는 자리를 견디며
그 사람의 온도를 떠올릴 때—
사람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롤랑 바르트는 말했다.
“사랑은 늘 타이밍을 놓친다.
사랑했을 때는 그만큼 아프지 않았고,
아플 때는 이미 사랑이 끝나 있었다.”
그래서 사랑은
통과한 후에야 이해된다.
너무 늦게 안다.
그 손길이 위로였고,
눈빛이 신뢰였고,
침묵이 다정함이었다는 것을.
늦은 깨달음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감정이다.
슬픔은 사랑을 뒤늦게 빛나게 한다.
이해받지 못한 사랑이
이제야 이해되고,
미처 주지 못한 마음이
가슴속에서 다시 자란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기억은 아프지만
그 아픔이
삶의 깊이가 된다.
사랑은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 사람이 내게 남긴 감정은
지금의 나를 만든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상처가 아니라 감사다.
그 사람이 내 삶에
한때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를 얻게 된다.
그 용기는
다음 사랑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