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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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크기가 사람의 그릇을 드러낸다
사람의 그릇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은 그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말은 곧 내면이 담긴 그릇의 가장자리다. 작은 말에만 갇히는 이는 작은 그릇에 머물고, 넓은 세계를 품는 말은 큰 그릇에서 흘러나온다. 그래서 말의 크기가 곧 사람의 그릇을 드러낸다.
말의 크기는 단어의 화려함이 아니라, 담아내는 범위에서 결정된다. 자기만 아는 말, 사소한 이익만을 둘러싼 말은 작은 그릇의 언어다. 타인을 고려하고, 공동체를 품으며, 미래까지 내다보는 말은 큰 그릇에서만 나올 수 있다. 결국 말의 크기는 마음의 시야를 보여준다.
작은 그릇에서 나온 말은 쉽게 흘러넘치며, 사소한 다툼을 일으킨다. 늘 불평과 원망, 비난으로 가득한 사람은 그릇이 좁아 작은 충격에도 넘쳐버린다. 반면, 큰 그릇에서 나온 말은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큰 바다에 작은 돌이 던져져도 쉽게 요동치지 않듯,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의 말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말의 크기는 또한 포용의 폭에서 드러난다. 남의 실수를 단칼에 잘라내는 말은 작은 그릇이고, 실수를 품으면서도 성장의 길을 열어주는 말은 큰 그릇이다. 작은 말은 상대를 움츠러들게 하고, 큰 말은 상대를 넓어지게 한다. 그릇의 크기가 말의 여유를 만든다.
큰 인물을 만든 것은 큰 말이었다. 공자는 작은 이해관계를 넘어 인류의 도리를 말했고, 링컨은 한 나라를 넘어 인류의 자유를 말했다. 그들의 말이 여전히 울림을 주는 것은, 그 말의 크기가 시대와 국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큰 말은 큰 그릇에서만 태어난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말의 크기는 그대로 드러난다. 직장에서 동료를 세우는 말, 가정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말, 사회에서 공동선을 말하는 태도는 곧 그 사람의 내면 크기를 보여준다. 반대로 남의 흉만 보는 말, 자기 이익만 따지는 말은 작은 그릇의 증거다. 사람들은 결국 말의 크기로 그 사람의 그릇을 평가한다.
말의 크기를 키운다는 것은 곧 마음을 넓힌다는 뜻이다. 좁은 마음에서는 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 안의 욕심을 줄이고,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고, 더 큰 세계를 바라볼 때 비로소 말의 크기가 커진다. 그때 내 삶의 그릇도 함께 넓어진다.
말의 크기가 곧 사람의 그릇이다. 작은 말은 작은 삶을 만들고, 큰 말은 큰 삶을 이끈다. 오늘 내가 쓰는 말의 크기가 내일 내 인생의 크기를 결정한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