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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큰 양푼에 전 선생의 얼굴이 묻혔다

평양냉면은 밍밍하다


누가 평양냉면을 맛있다 했나?

속았다


맛이

밍밍하다



오랜 동료인 전 선생이
분당에 위치한 평양냉면 맛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함흥냉면의 새콤한 맛에 길들여 있다.
냉면을 특대로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전 선생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그 모습은,
마치 초등학교 졸업하고 짜장면 앞에서 입맛 다시는, 영락없는 시골 소년이다.

이윽고

평양냉면은
큰 양푼에 넉넉히 담겨 나왔다.
매가 꿩 낚아채듯
그 큰 양푼을 양손으로 들어 육수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전 선생 얼굴도 만만찮다.
큰 바위 얼굴이다.
그 얼굴 전체가 양푼에 묻혀 뵈지 않는다.

"아줌니, 여기 육수 좀 더 주이소"
경상도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가 감칠맛이다.
한참을 들이켠 후,

멍하니 앉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본다.
그제야
"김 선생도 한 잔 들이켜보슈"
한마디
건네고는
이내
또 양푼에 머리를 박는다.
전 선생은 마파람에 게는 감추듯 뚝딱
한 그릇을 다 해쳤다.


나는
마지못해 들이켠다.

순간
아,
이게 무슨 맛인고?

어릴 적
엄마가 저녁 쌀 씻고 남은 뜨물 맛이다.
'이 맛을 밍밍하다 할까'

어떤 이는 행주 짠 맛이라고도 했다.

이후

나는
전 선생의 식사 대접엔 응하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내게 냉면은 평양냉면이다.
밍밍한 맛이어야 한다.
참,

밍밍한 맛을 찾기까지 오래 걸렸다.


불현듯
전 선생과
평양냉면을

그때 그 집에서 느끼고 싶다.


밍밍한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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