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쌤 May 09. 2024

사막의 오아시스마을   그리고 나스카라인

페루

 요란한 폭죽의 밤은 지나고 새해, 새날이란다. 상쾌!


9시, 버스는 300km 남쪽에 있는 사막 도시 ‘이카’를 향해 달린다. 거기에 ‘와카치나’라는 오아시스 마을이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정녕 어떤 모습일까. 황량하고 끝도 없는 모래더미에 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그 옆에 기적처럼 조그만 샘물이 하나 있는 곳, 내 상상으로는 그런 곳인데.  


중간에 pisco 지역, 페루의 전통주 pisco라는 술을 만드는 마을에 들른다.  만드는 과정을 견학하고 한 잔 마신다. 세다.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즐겁게 한 잔을 마실 수 있기까지 과정이 단순하지 않음을 알다. 술을 보관하는 저장고를 보면, 술은 참 많은 시간과 정성과 숙련을 요하는 귀중한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술! 마실 때 함부로 마시지 말아야지, 경건해야 해.ㅎ

   4시 도착. 오아시스가 이런 곳이구나. 작은 샘물이나 우물 같은 곳이 아니고 호수이다. 모래사막 한가운데 있는 푸른 호수, 신비롭다. 이런 곳이 있다니....

그러나 신비할 것 같은 작은 마을이 예상을 뒤집고 번잡하다. 호수 주변엔 신정 휴가 중인 페루인들과 관광객들로 사람 반, 물 반인 듯하다.


 이 많은 이들이 여기 오아시스 마을에서 무엇을 하나? 앉아서 명상을 하면 딱 좋겠는데 그게 아니다. 사막에서의 놀이가 있단다.

  버기카 타기!

 버기카라는 차를 타고 사막 투어를 한단다. 한 차에 12명이 타고 사막지대를 횡단하는 것이다. 예전 이집트에서 사륜차를 타고 사막을 달릴 때는 낙타를 타고 모험하는 기분이었는데, 여기서는 버기카가 굉음을 내며  온통 모래로 쌓인 언덕을 엎어질 듯 질주한다. 아름다운 사막의 풍경 자체로도 너무 멋진데, 거기를 오르락내리락할 때  언덕 밑으로 차가 질주할 때는 헉, 가슴이 조여 온다. 스릴이다.

 내 좋아하지도 않는 스릴임에도, 생후 처음 해보는 이 놀이가 놀랍고 괴성을 내지르며 이 놀이를 즐기고 있는 내가 놀라울 뿐이다.


 두 번째 놀이, 샌드보딩.

급경사의 모래언덕 위에서 저 아래까지 보드를 타고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는 것이다. 아찔하다. 이 또한 처음 하는 놀이인데, 못할 것 같았는데, 아 또 그 스릴이란....

세 번을 내려간다. 한 번은 보드에 엎어져서, 한 번은 보드에 앉아서, 또 한 번은 아주 높은 곳으로 옮겨서 다시 엎어져서.... 그 속도와 바람과 끝없는 모래사막과..... 이런 경험은 처음, 아, 이래서 젊은애들이 보딩을 하는구나...

이 마을에 이런 레포츠를 즐기러 온단다.


 사막에 떨어지는 노을이 그렇게 멋있다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서 보질 못하다. 아쉽지만 노을의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버기카와 샌드보딩의 화끈함으로 퉁.

 이제 내게 사막은 고즈넉하고 황량하고 원시적인 공간이 아니다. 끼악 꺄악 소리치는 놀이공원으로 되어버렸다. 아, 잘 놀고 나서 정신 차리니 뭔가 잃은 듯 무지 아쉽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때 잠시 노을을 보다. 예쁘다. 사막 위에서 보았다면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막의 이미지였을 게다. 매우 아름다웠겠다.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들어오다. 그래도 좋았어.


내일은 ‘나스카’이다. 새벽 5시 출발이란다.


 2시간여 버스로 달려 8시에 경비행기 탑승하다. 30여 분간 하늘을 날며 13개의 나스카라인을 찾을 거란다. 12인승 경비행기, 승객 열 명은 탑승 전 몸무게를 쟀다. 왼쪽 오른쪽 비행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두 명의 승무원이 탑승한다. 한 명은 왼쪽 아래 보세요, 오른쪽입니다. 저기입니다... 열심히 그림을 찾아 설명을 하고 한 명은 그 가까운 곳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거다.


 처음 그림, 바위에 그려진 우주인을 찾다가 멀미 작렬하다. 날개와 비행기가 기울어지면서 속이 울렁이기 시작, 힘들다.

멀미하면 안 되는 감동적인 상황인데, 이 그림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날은 맑고 쾌청하여 보통 이렇게 선명하게 보기 힘들다는데...

안간힘 쓴다. 저 아래 보이는 그림은 정녕 무슨 뜻인가, 인간이 신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말이 맞을까? 아님 신이 인간에게 보내는 신호는 아닐까?

 얼마나 큰 그림인지 지상에서는 그 모양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고, 이 높이의 공중에서는 구체적으로 감을 잡을 수 없으나, 나는 순간 그들의 예술적 행위, 혹은 종교적 행위를 아주 대범하고 장난스럽게 또는 아주 정성스럽게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멀미가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왜, 어떤 방식으로' 그렸는지 아직까지도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는 이 신비로운 작품들을 비행기 한번 타고 쉽게 훑어보고 가는 것은 왠지 예의가 아닐 것 같다. 감수하여야 하리. 나타나는 그림은 다 사진을 찍었다.

 기원전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 2천 년이 넘도록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림들이 신기하고도 정겹다. 사막 위 그림라인뿐 아니라 바위덩어리로 되어 있는 웅장한 산맥들의 풍광이 참으로 멋지게 펼쳐져 있다.


하늘을 나는 중에 그 나스카라인 지역 한가운데 고속도로가 놓여있는 것을 보다. 최초에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기술도 놀랍지만, 그 유물 깊이 들어와 그림까지 갈라놓는 현대의 이 폭력적인 라인도 못지않게 놀라울 뿐이다.


 기념품으로 콘도르가 새겨진 목걸이 펜던트를 사서 목에 걸다. 하늘에서 이 콘도르 그림을 봤을 때는 진심 가슴이 울렁였다. 정겹다. 나는 아마 이 목걸이를 행운의 표지처럼 자주 몸에 지닐 것 같다.

 버스를 타고 다시 리마로 돌아오다. 저녁 식사 후 카페에서 집과 학교의 아이들에게 엽서를 쓰다. 나스카라인을 찾으러 집중한 하루, 몹시 곤하고 힘들었으나 감동과 전율이다. 이 느낌을 전한다.

 리마에서 버스가 뒤집혀 절벽으로 굴러 떨어져 30여 명이 사망한 기사를 보다. 여기 길이 정말 그랬다. 구불구불과 절벽....

이전 01화 남미 여행의 시작 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