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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쌤 Jul 20. 2024

캄보디아, 애정 돋는 이 나라

2004  가족 여행

 우리 네 식구가 떠나는 첫 해외 자유여행이다.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로, 그리고 다시 태국으로 오는 13박 14일의 긴 시간이다.

숙소와 차편은 우리 일정에 맞게 여행사를 통해 계약을 하고, 나머지는 우리 맘이다.

10살, 11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니 준비 단단히 해야 한다.


기간: 2004. 1.6~ 1.19

준비물: 옷 5벌 정도, 세면도구, 화장품, 선크림, 모자, 수건,  건전지, 필름, 카메라, 여행가방, 선글라스, 샌들, 운동화, 의약품,, 화장지, 물휴지, 계산기, 시계, 손전등, 생리대, 모기약, 손톱깎이, 면도기, 여권, 사진, 항공권, 책, 일기장, 카드, 일정표, 보험증, 전대


  방콕에서 캄보디아로

  방콕 도착 후 첫 밤을 어른 둘은 뒤척였다.

 이른 아침 카오산로드로 가서 정확히 7시 20분에 출발하는 미니버스를 타고 캄보디아로 가는 국경도시 '아란'으로 향한다.

 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내려주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는 걸로 봐서 그의 임무는 여기서 끝인 것 같고, 그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하는 건가 보다. 뭘 하는 건지 좀 당황스러웠지만, 이리저리 눈치를 보니 저쪽에 외국인 전용 출입국 관리소가 있다. 말로만 들었던 국경지방의 동냥하는 아이들이 맨발로 줄지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내 전대와 나의 눈을 자꾸 곁눈질하길래 조심해야지 했는데 어느새 보니 내 전대 지퍼는 열려있더라. 놀라 들여다보니 아직 손은 안 댄 듯. 그 참 맹랑한 놈들일세. 내가 눈을 부릅뜨고 “이놈들이!” 하였으나 그들은 별로 겁먹지도 않은 듯 능청스럽게 딴청이다. 잠시 선생티를 낸 것 같아 속으로 웃다.


  태국 출국신고를 끝내고 반대쪽으로 나가면 국경. 걸어서 국경을 넘으면 바로 캄보디아 비자 신청하는 곳이 나오고 거기서 비자 신청을 한다. 이것저것 쓰는데 앞으로 이런 과정이 많을 것 같다. 패키지여행에서는 아마 여행사에서 다 해주지 않을까. 머리가 띵해온다. 헥헥하는 더위와, 출입국 신고 과정의 지루한 시간들, 동냥하는 아이들로부터 지갑 조심하는 등으로 무지 신경 거 같다. 비자 신청이 끝났는가 했더니 다시 입국 신고가 남았다. 여기까지 두 시간 삼십 분이 걸렸다.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국경으로 들어오는 길이 비포장이라니, 우리나라에 맡겨놓으면 하루 만에 포장해 놓을 텐데..... 빨리빨리 나라에서 온 국민 맞다.

 숙소까지 오는 길에 캄보디아 아이들을 보다. 작은 아이가 더 작은 아이를 업고 관광객을 향해 구걸한다. 이미 들은 이야기라 막 놀라지는 않았으나, 오랜 내전 등으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이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도로에서 보는 집들, 가게들, 논밭들... 힘겨운 국민들이 너무도 가난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보다.


  앙코르와트 유적지 1일

 앙코르 유적지를 3일 동안 돌기로 한다.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택시기사와 계약, 딸아이는 생일이 지나지 않은 관계로 동생과 함께 무료. 우리 둘만 입장권을 끊는다. 각 40불씩 내고 기다리니 사진을 붙인 확인증을 준다. 이 패스로 3일 동안 돌면 된다.


 오전에 고대도시 앙코르톰을 돌기로 한다.

남문으로 들어가 바이욘 사원의 거대한 유적들을 보다. 힌두교 사원으로 지었던 것이 나중에는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는데, 돌로 만든 사원들과 조각품들, 돌에 새긴 벽화들이 뭔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대단하다' 감만 잡을 뿐이다. 파퓨온 사원은 복원 중이고 30년 후 완성할 계획이라고 쓰여있다. 피메나 카스라는 곳, 경사 70도 정도의 계단으로 올라가는 거다. 망설이다 올라가 보기로 한다. 장난이 아니다. 오금 저리고 긴장되기는 했으나, 산 생각하면서 오른다.

 코끼리 테라스에서 코끼리 조각 여러 마리를 보다. 문둥왕테라스 벽면 조각들이 엄청 많다. 역시 뭔 사연인지는 모른다. 가끔 팔, 다리 없는 사람들이 피리를 불며 구걸하며 앉아있어 놀라곤 한다. 지뢰가 터져 부상당한 이들이 많고, 지금도 어디에서 지뢰가 터질지 모른다고 하니,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겪는 겹겹의 고통들을 어찌해야 하나.....

 처음 사람들 흐름에 따라 돌 때는 뭐가 뭔지 모르겠더니 여러 유적지를 돌면서 이 바이욘 사원을 여러 번 지나게 되면서 비로소 그 큰 규모를 알게 되고 새삼스럽게 감탄도 나온다.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다시 유적지를 돌기로 한다. 낮엔 너무 더워 휴식을 취해야 한단다. 그래야 할 것 같다. 해가 따가워서 정신이 없다.

프라사드크라반에는 아무도 없었다. 차를 내리면 달려드는 캄보디아 아이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질겁을 한다.

 이 앙코르의 유적들이 몇 백 년 간 숨겨져 있던 정글이었음을 잘 보여주는 곳, 타프롬!

용수의 나무뿌리가 유적을 뒤덮은 곳이다.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긴 세월 제멋대로 자유롭게 자라나 건물을 뚫고 있다. 사방으로 뿌리를 드러내고 엉켜있는 뿌리를 보면 이 나라의 역사가 얼마나 많은 아픔과 사연들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상상이 된다. 건물 곳곳에 새겨져 있는 부조상들이 아름답다.


 이곳저곳 안내 책자를 보며 찾아다니고 걷는다. 일몰 감상으로 유명한 프놈바켕 언덕으로 향한다.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고 우리도 언덕 위로 올라가 일몰을 기다린다.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느끼다. 예상보다 덜 덥고 덜 힘들다. (사실 무지 덥고 무지 힘들지만) 머리도 약간 뜨끔거리지만 참을 만도 하다.

 드디어 일몰 시작. 하늘이 붉게 되다. 사람들은 숙연하다. 소란스러움도 줄어든다. 서서히 내려가는 해는 정말 예쁘구나. 왜 이리 행복한지. 아이들과 함께여서 더 그런가.

  

 앙코르와트 유적지 2

 오늘은 앙코르와트의 날이다. 새벽에 보러 간 '유명하고 아름다운' 앙코르와트 해돋이는 붉은 구름 위로 올라온 해를 보고 끝. 이게 원래의 해돋이인지, 불발 해돋이인지는 모르겠다. 오후에 다시 간다.


 3시에 출발하여 6시까지 앙코르와트에 머물다.

그냥 지나칠 곳 없이 구석구석의 조각들, 부조들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인간 세상에서 신의 세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라는데 정말 그런 것이 아닐까, 함부로 오를 수 없이 아찔하다. 우리 아이들도 올라간다. 무서워하더니 어찌 올라간다. 장하다!

그 유명한 탑, 파인애플 같이 생긴 다섯 개의 탑을 가까이서 보다. 감개무량이랄 밖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이 팀 저 팀 가이드들의 열띤 설명이 엉킨다. 힌두교 신들의 전쟁 이야기인 것 같다. 신들이 싸우는 신화가 난 참 재미없다. 미술 하는 사람이 보면 좀 다르게 보일까?

 앙코르와트는 여기저기 공사하고 복원 중이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은데 계단을 오르내리고 손으로 만지고 비비고 하는데 이 오래된 유적지가 제대로 보존되고 남아날까 염려가 다. 캄보디아의 주요한 관광수입원일 텐데 가난한 나라에서 수입을 포기할 수 없을 테고,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는 걸까.

  

 앙코르와트 유적지 3

 오전에는 유적지 몇 곳 돌아보다.

화장터가 있었다는 프레루트, 붉은빛의 사암으로 마치 앙코르와트 부조처럼 조각되어 있는 곳 반티스레이, 교복을 입은 캄보디아 중학생들이 와서 깔깔대며 놀고 있던 동쪽 메본, 프레야칸 앞에서는 鳥神과 한 컷... 여기까지만 돌기로 한다.

 앙코르와트를 다시 가보기 위해 예정된 곳은 접고 숙소로 돌아오다. 이대로 가기는 너무 아쉽다.


 평양냉면 집에서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란다. 랭면을 먹는데 비싼 편(7불)이다. 이 집은 어떤 손님을 고객으로 하는 음식점인지 모르겠다.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리 없고, 캄보디아인이나 외국인이 자주 찾는 곳일 리는 없고, 한국인을 위한? 외화벌이를 위한? 캄보디아에 오는 한국관광객을 상대로 한 북한 음식점?

 마침 한국인 단체손님이 떼로 몰려온다.


 서빙하는 여자분들이 공연을 한다.

‘반갑습니다.’ 흥겨운 노래로 시작하여, 그다음은 '고향의 봄'을 여럿이서 율동까지 곁들여 애절하게, 마지막으로 '새타령'이 간드러진다.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곱게 부를까.

밖의 볼거리로 나는 잠시 또 감상에 젖는데, 그 사람들은 그렇게 공연에 열중하고 예쁘게 부르더니 공연이 끝나고는 안면이 딱 굳는다. 더 이상 반갑지도 고향이 그립지도 않은 듯이 말이다. 이남 사람들의 화려한 외출과 그들을 접대하는 이북 사람들의 관계에 불과한 것일까. 무섭다고 해야 하나 슬프다고 해야 하나. 얘기도 해보고 싶은데 '쌩'할 것 같아 용기도 나지 않는다. 아들 녀석이 컵을 하나 확실히 깨버리는 통에 감상에서 벗어나 커피를 마시고 계산하고 나온다.

23. 5불. 28000원 정도니까 물가 싼 이 나라에서 우리는 과용을 한 것이다.


 아이들은 숙소에 있기로 하고 그와 나만 나온다.

 한 시간의 여유가 있다. 모처럼의 한적한 시간이다. 녀석들 잃어버릴까 봐 하나씩 맡아 손잡고 다니는 통에 정작 우리는 같이 붙어다니기도 힘들다. 자유롭기까지 하다. 앙코르와트를 부지런히 돌며 구석구석을 다시 보다.

 12세기 초에 지어진 사원, 긴 시간 세상 사람에게 잊힌 공간이거나 폐허가 되기도 하고 약탈되고 파헤쳐지는 많은 수난을 겪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신에게로 다가가는 가파른 계단에 다시 오르기로 한다. 맘 쫄리지만 희열이 장난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간다. 하나하나 볼 게 많은데, 미술에 문외한인 나도 이렇게 정신이 쏙 빠지는데.... 계단을 다시 내려오다. 사실 내려올 때가 더 심각하다. 맘이 콩알만 해진다.

 한 시간은 역시 짧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앙코르와트, 신에게 알현하는 계단을 두 번이나 올라갔다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톤레삽 호수

 숙소에 들러 아이들을 데리고 톤레삽 호수로 간다.

호수가 아니라 한강보다 길고 넓은 바다 같은 호수이다. 호숫가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이미 들은 터라 '관광' 하는 것이 맞나? 찜찜했지만 노을이 너무 멋있다 하니...


 배를 탈 때부터 영 거북하다. 찌그러져가는 나무배에 이미 옷이라 할 수 없는 때에 찌든 구명복, 이름값은 전혀 못할 것 같다만 그래도 배를 보아하니 안 입을 수가 없다. 호수에서는 요상한 냄새까지 나면서 호수 물은 이미 호수 물도 아닌 것이, 어떤 이는 빨래를, 어떤 이는 옷 벗고 목욕을, 어떤 이는 저녁을 짓는 듯도.... 호숫가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호수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주는 젖줄기인 듯하다. 관광객들은 그들의 삶을 기막혀하며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아님 관계치 않는 듯하다. 그들의 부엌이며 방이며 삶이며가 환히 드러나고 있는데, 갑자기 그들을 보고 있는 내가 미안하다.


 배를 타고 노를 저어 하교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어찌나 씩씩하게 노를 젓는지 어린아이들이 참으로 당차고 똘똘해 보인다. 고마워라, 잘 성장하길....

 배는 좀 더 멀리 나간다. 우리의 사공은 배를 호수 한가운데 세워놓더니 팁을 달란다. 너무 넓은 호수, 아니 바다 한가운데서 (난 솔직 간이 쫄았다.) 뭐라 하는데 돌아가서 달라는 건지 지금 달라는 것인지 이상한 분위기를 잠시 풍긴다. 잠시 후 못 알아듣는 우리를 할 수 없다는 듯이 포기하고, 호수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간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배를 탄다고 하였는데 40분 만에 돌아온다. 그 아름답다던 노을은 구경도 못했다. 구름이 잔뜩 껴있는데 해는 어디서 떨어지겠는가. 팁이 없어서 일찍 돌아왔나?


 태국 국경을 넘을 때나, 톤레삽 호수를 돌 때 한국에서 온 아이들은 효자가 된다고 한다. 그 어려운 아이들을 보면서 충격을 먹는대나 어쩐대나. 그래 우리 아이들에게 느낌을 물어봤더니, 아들 녀석은 호숫가에 사는 그 사람들은 참 재미있겠단다. 물가에서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그들이 되게 재밌게 보였나 보다.

어처구니... 효자는 무슨 효자...


 내일이면 다시 방콕으로 간다. 아이들은 도마뱀이 없는 방콕으로 가고 싶어 한다.( 우리가 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별장같이 다 좋은데 집에 작은 도마뱀이 있다는 거. 벽에 딱 붙어 있다.) 여기 캄보디아보다 훨씬 도시다운 냄새가 나는 방콕이 마치 서울 같다는 느낌을 받는 거 같다. 나도 좀 그렇다....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8시 30분 숙소 출발하여 2시경 국경도착. 출국과 입국 심사.

태국 입국심사를 하려 줄을 서는데 비가 온다. 건기라고 들어 우산 챙길 생각은 꿈에도 안 했는데 갑자기 비가 와 난감하다. 게다가 태국 사람들 일처리가 심하게 느리다. 밖에서 비 조르륵 다 맞고 한 시간 넘게 긴 줄을 서고 드디어 입국심사 끝. 번화한 방콕으로 번잡한 방콕으로 8시 30분쯤 도착. 12시간 걸려 태국 카오산로드로 오다.


 태국으로 넘어오며 캄보디아와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나라 50, 60년대와 비슷한 상황이다.

 내전 이후 절대 빈곤에서 허덕이는 국민들, 피폐한 농촌과 도시빈민과 비인간적인 환경과 삶들,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구걸하고, 기브미초콜릿해야 했고, 어린 나이에 직접 생활 전선으로 던져져야 했고, 가난이 무지 고단한 것이었지 부끄러움이 아니었고, 누구나 어려웠고, 나라는 안정이 되지 않았고, 정치인들은 무능했고.... 너무나 비슷하다.


 지금 우리나라가 절대빈곤에서 헤어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우리 부모님들 정말 고생 많았고 대단하시고, 박정희를 조금 (전혀에서) 아주 조금 인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캄보디아의 현 정치 상황이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이 나라 위정자들은 자기  나라의 신발 벗은, 구걸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꼭 책임져야 한다. '경제 수치'나 ‘이념, 주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의 인간적인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기들 이익에 골몰하는 정쟁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알아야 한다.

 부디 캄보디아가 빠른 시간 안에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오는 중간중간 들에서 일하고 있는 캄보디아 농민이 보이면 고맙다.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얘기니까.

 방콕으로 돌아오니 상대적으로 부유하다. 넓은 평야에 나무들이 계획적으로 심겨 있더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콕은 하나도 안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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