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려오면 가까이 국회도서관이 있다. 발행되는 거의 모든 책이 소장되어 있으며, 읽고 싶은 논문이나 자료가 풍성하다. 공간이 널찍널찍하고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다. 점심값도 커피 값도 착하다.
열람실에 들어오면 자유롭게 책 읽거나 글 쓰는 사람들,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운 그림이다. 특히 희끗한 연령대분들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참 반갑다. 광화문의 노년이 아닌 도서관을 선택하신 분에게서 얻는 감사함인가.
외국에 다니면서 가능한 도서관을 보고 온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이 이런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읽거나 잠시 졸거나 놀고 계시는 어르신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아이와 같이 놀고 있는 엄마들, 게임하고 읽고 있는 청소년들……. 도서관에서 노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품격 있게 보였는지 모른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더 많은 사람이 도서관에서 놀았으면 좋겠다. 아이 때부터 엄마들도 아빠들도 노인이 되어서도.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이 평화를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창을 보면 서가의 책들이 반사되어 보인다. 넓은 창 밖 위로 펼쳐진 하늘, 아래 무성한 나무들의 풍경이 마음을 그냥 무장해제 시킨다.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 읽고 싶은 책이 끝도 없다. 내가 매일 와서 하루에 한 권씩 읽는다 해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읽을 책들일 것이다. 2년이 지나면 서고로 들어가고 끊임없이 나오는 새 책이 서가에 꽂힌다. 고전을 다시 읽기로 한다. 일리아드오디세이, 햄릿, 제2의 성, 자라투스트라……. 머릿속에서는 행복한 비명이 나온다. 읽을 때의 그 마음은 운동할 때 나오는 아드레날린 뿜뿜과 다르지 않다.
일단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내려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 향기 하며, 뿌듯함이란…….
책 향 만만찮은 도서관의 공기는 참 쾌적하고 평화롭다. 난 천국이라 이름한다. 누군가도 그리 말했다며 친구가 부러워했다. 이 일상의 감동들이 내 몸 안에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을 게다.
간단히 일기를 쓴다.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정리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기록한 여행기 한 편을 읽는다. 독서록의 목차를 보다 기억하고 싶은 책의 독후감도 읽는다. 내 글을 읽는 것도 은근히 재밌는 놀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는다. 갈수록 머리의 용량이 딸리고 이해 정도가 충분치 않음을 안다. 머리 회전의 둔함 때문일까? 번역의 문제일까?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적지 않다. 상관없다. 이제 따지지 않기로 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읽는다. 읽을 수 있는 것도 복이며 족하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록을 한다.
책 읽는 시간은 평화롭다. 아무 걱정이 없다. 늘 새로운 세상이고 새로운 지평임을 짐작한다.
도서관 식당의 점심은 가성비 갑이다. 영양사에게 인사하고픈 영양 충분 식단이다.
저녁을 준비하러 집으로 갈 때까지 책을 읽는다. 가벼운 소설은 하루 한 권 마칠 수가 있고, 두꺼운 사상집은 며칠씩 걸려 읽는다. 긴 호흡이 좋다. 따로 전시된 문학상 수상작들을 다 읽어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이 또한 급하지 않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약간 기가 빠졌다. 심한 정신노동의 대가일까, 그러나 마음이 가볍다. 충만하다. 이대로 세상이 끝난다 해도 허둥대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