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쌤 Sep 17. 2023

안세영은 발레를 하는 것 같아

배드민턴 사랑!

안세영!


 올해 안세영의 경기는 작년까지와는 달리 완전 변했다.

수비 위주의 방어적인 경기는 상대의 연속적인 맹렬한 공격에 무너지면서 우승의 문턱에서 멈추곤 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달라진 것이다. 수비는 이미 완벽해졌고 적절할 때 공격을 추가하더니, 포효의 세리머니와 함께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천위페이', '야마구치',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훌륭한 선수들이 이제는 안세영과의 대결에서 고개를 숙인다. 올해 열린 열세 개의 세계 대회에서 안세영은 아홉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가장 역사가 깊은 전영 오픈, 점수가 높은 일본 오픈, 한국 오픈, 중국 오픈을 비롯, 배드민턴의 올림픽인 세계선수권대회……, 큰 대회 모두 연속 우승이다. 이게 가능한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우승도 의미 있지만, 그녀의 경기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는 경탄, 놀라움 그것 때문일 게다.

 몇 년째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올해 그녀의 경기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았다. 배드민턴 협회에 들어가 각국의 오픈대회 매 대회마다 그날의 경기 일정을 확인하고, 중계를 통하거나 유튜브 녹화본 등으로 그녀의 경기를 본다. 내가 게임하는 재미에 빠졌지, 남의 경기를 보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줄은 정녕 몰랐다.


 그녀의 경기는 ‘믿고 보는’ 경기이다. 아무리 지고 있더라도 이길 거라는 믿음이 있다. 재밌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녀의 경기는 ‘완벽한’ 경기이다. 어떤 날카로운 공격이라도 몸을 이리저리 던져 막아내는 유연함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엄청난 체력을 요하는 단식경기인데, 안세영의 체력은 무너지는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상대 선수의 체력을 소진하게 하는 치밀한 경기 운영을 한다. 상대 선수가 안쓰러울 때조차 있다.

 어떻게 공격을 해도 막아내니, 상대 선수는 무리한 공격을 하거나 제풀에 지치게 된다. 틈나면 바로 빈 곳을 찔러대니 무엇을 해볼 수가 없다. 늘 결승전 같은 경기를 치러냈던 강적 '천위페이' 선수조차 이제는 안세영을 어찌해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녀의 겸손하고 인상적인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안세영 선수는 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요……."


 빡세게 준비해야 할 시험을 앞두고 7월, 여수에서 열리는 코리아오픈을 직관하기 위해 떠났다.

안세영은 물론 그동안 tv에서 익혀뒀던 멋진 선수들이 대거 참여하니 모든 걸 제쳐둘 가치가 충분히 있다.

 '천위페이'와의 준결승전은 배드민턴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흐트러짐 없이 절도 있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체육관은 흥분의 도가니, 전율이다.

 친구들에게 현장의 감동을 전한다.  

“안세영이 발레를 하는 것 같아.”


 배드민턴 사랑!


  10여 년 배드민턴에 빠져 민턴이와 신나게 놀고 있는 나는 아마추어 동네 동호회원이다.

 그런데 신기하다. 안세영 경기를 중계를 통해 보든, 직관을 하든 그때 내가 표현한 언어들을 이후 중계 해설자들을 통해 들었다.

 ‘믿고 보는 경기’, ‘무결점의 경기’, ‘완벽한 경기’!

심지어 배드민턴이 처음 시작된 인도, 그쪽의 유명한 영화감독 겸 배우 ‘아미르 칸’이 그랬다는 기사가 며칠 전 떴다.

 “배드민턴은 발레와 같다.”

우연히 보게 된 이 기사를 보지 못했다면 이 글은 표절 시비 붙을 뻔했다.

이쯤이면 해설가로 나가도 될 법?

‘자세히 보면 보인다.’

‘사랑하면 보인다.’가 맞는 말이다. 아마 계속 관전했던 팬들이라면 누구나 깨달았던 관전평일 게다.


 배드민턴이 없었다면 나의 저녁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직장에 다닐 때, 웬만하면 저녁 약속을 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민턴 하러 갈 생각에 말이다.

긴 여행 가서도 제일 생각나고 몸이 근질거리게 하는 것은 민턴이었다.

 격렬히 게임을 하고 땀 쏟아내고 웃고 파이팅! 하는 것이 완전 끝내주는 운동이다.

 하루의 힘듦, 쌓인 것, 남겨진 것, 필요한 위로……, 모든 것을 정리해 주는 그 기분으로 거의 매일 달려갔을 것이다.

일 년 내내 문을 여는 체육관에 가면 늘 사람이 있었다. 어찌 반갑고 고맙지 않으리…….


 다음날 이불속에서 ‘아구구구’ 소리가 나기도 한다지만, 어깨 무릎 팔 허리... 여기저기 뼈가 몸부림치는 사람 많다지만, 뭐 가끔 침 맞거나 시술이나 수술하기도 한다지만, 그래도 한번 빠진 이 경기를 그만둘 수 없다는 걸 민턴 하는 사람들은 안다.  2시간 정도 방방 뛰며 게임할 때 나오는 호르몬은 가히 마약인 듯하다. 게임을 할 때는 하나도 아프지 않으니까.


 아, 셔틀콕 하나에 목숨 건 듯 승부에 너무 진심인 때도 없지 않고, 다른 스포츠도 그렇겠지만, 잘하는 이들끼리만 재미지게 치고 싶어 하거나 좀 늦게 배운 이는 안 낑겨줄라고 하는 치사한 면이 없지 않으나, 이 정도만 반성한다면 몸 부딪치며 혈투를 벌이는 다른 경기와는 다르게, 배드민턴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점잖게, 인간적으로, 신사숙녀적으로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놀이이다.


  운동을 마치고

 이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술 한 잔 나누거나,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밤하늘을 걸어오거나,

집에 와서 샤워 후 뿅! 하며 맥주 한 캔을 따는 것은 덤이고 꿀이다.  

 이 맛 때문에 운동하나? 이러기도 한다. 흐흐흐…….


이전 17화 도서관에서 놂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