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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찬 Sep 29. 2024

2-5. 상상

실제로 마주해야 보이는 길



걷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다리가 아플 때쯤 의자가 없으면 섭섭합니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곳이든, 가끔씩 찾아가는 곳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이곳에 의자를 놓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합니다.

'이 정도라도 있는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보니, 바라는 기준을 높이고 싶더군요. 이럴 때는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일상에서 간단한 상상을 직접 자주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건물보다는 의자가 덜 부담스럽습니다.


만약 이곳에 벤치를 놓는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누가 어떤 마음으로 머무르게 될지, 하루 동안 그늘이 어떻게 지는지, 건물 입구 혹은 경사로와 지나치게 가깝진 않은지, 앉았을 때 무엇이 보이는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네요.


왼쪽 사진은 벽돌 건물 쪽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담장 쪽에서 올려다 본 모습입니다.


벤치가 없었다면,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저 안에 들어갈 생각을 못하겠죠. 바깥에 가까워질 수록 '나도 한 번 앉아볼까?'라는 생각을 하기가 쉬워집니다. 만약 벤치가 ㄱ자 모양으로 바깥까지 이어져 있다면 더 접근하기 쉽지 않을까요?



작가 김지우는 자신이 겪은 건축학과 생활,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로 여겨지는 졸업 설계 프로젝트(졸업전) 과정을 『크리틱』으로 펴냈습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 17명의 졸업전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공간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괴로울지 가늠이 안 될 정도입니다. 장소와 주제를 정하고, 설계 도면을 만들고, 모형을 만들고, 건축학과 교수들과 건축사사무소 소장들에게 자신의 건축을 설득해야 했으니까요.

참으로 다행이죠. 우린 건축학과 학생이 아니라서. 마감 전 날까지 밤을 새면서 작업할 필요도 없는 데다가 우리의 아이디어는 현실성 측면에서도 더 자유롭습니다. 김지우 작가가 표현하듯 "닥치는 대로 생각하며 말도 안 되는 짓을 충분히 해보는 과정"이 용납됩니다. 이렇게 누구나 모든 공간을 상상하고 그려보고 전달한다면, 그 아이디어가 결국 전문가의 머리와 손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수학문화관입니다. 내부 전시물 중 '수학으로 지은 구조'가 있더군요. 그래서인지 외관이 좀 더 직관적으로 재밌어 보이면 어땠을까 싶긴 합니다.


나무 사이로 어렴풋이 드러나는 건물들이 보이시나요? 학교 건물입니다. 네모반듯하고 큼지막하게 짓는 게 아니라 작게 여러 채를 배치해놓았습니다. '저렇게 생긴 건물도 학교가 될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만들기에 좋은 사례죠.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가로수로 가려놨다는 겁니다. 다양한 형태를 가진 학교 건물이 드러남으로써 외부와 연결된다는 건, 교육기관으로서 의미도 있지만 건축적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같은 열린 학교가 1순위로 생각해야 할 대상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겠죠. 학교 건축과 관련해 건축가 유현준은 이렇게 말합니다.


프랑스에서는 학교 건축물이 건축상을 받는다. 프랑스 아이들은 (중략) 향후 다른 건축을 보는 안목도 좋아질 것이다. 왜 우리나라 아이들은 그런 다양하고 좋은 학교에서 자라나면 안 되는가? 왜 마당이 있고, 쉬는 시간에 나무 그늘에서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 수 없는가? 왜 이 땅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학교 건물에서 자라고, 전교생이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다양성 없는 건축 공간을 제공하고서 왜 그들에게 창의적인 생각을 기대하는가?


경험과 상상은 번갈아가며 서로를 자극합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상상과, 실현된 경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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