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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찬 Sep 26. 2024

2-4. 조화

디자인은 누구를 위한 걸까?




허허벌판에 짓지 않는 한, 건축물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런 건축물도 사실은 허허벌판이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여건은 장소마다 다르겠지만 건축은 그만큼 주변과 상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1-5. 규모> 편에서는 거대하기 때문에 건축이 책임을 갖는다고 했죠. 하지만 크기뿐만 아니라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게 했는가’ 역시 책임에 포함됩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는 조화로운 경관을 평가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조화롭다는 말 그대로 '어울림'입니다. 의문을 가질 법도 합니다. '건물 한 채를 세울 때도, 그 주변 환경(지형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고려한 전체적 맥락)을 고려해서 설계하는 것은 상식 아니냐'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비슷해야만 조화로운 것도 아니니까요. 뒤에서 다루겠지만 산, 강, 하늘과는 무관한 듯 서있는 '아파트 병풍'이 대표적이죠. 획일화된 가림막이 아름다운 풍경을 삼켜버린 겁니다.

그렇다면 주변과 어울리는 건축물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앞에서 얘기가 나온 김에 '산'이라는 환경이 주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건축가 서현은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서 건축가 김태수가 산 중턱에 설계한 두 작품을 소개해줍니다. 천안에 있는 계성원과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입니다. 먼저 저자는 계성원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경사가 아주 급한 땅에 건물을 설계하게 된 건축가는 지형을 따라 완만하게 굽은 벽처럼 건물을 만들어 앉혔다. 건물을 휘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부수적인 많은 문제점을 감수하고 해결해야 한다. 건축가는 이런 어려움을 무릅써도 좋을 만큼 이곳에 굽은 건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더 정교합니다. 북쪽 진입로(후면)를 따라 남쪽(정면)으로 오면서, 건물의 배경이 산에서 하늘로 바뀝니다. 이렇게 의도한 건 남쪽에서 바라보는 북쪽 하늘이 더 푸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를 "가장 넓고 가장 파란 하늘 화폭에 그려진 가장 높은 명도의 건물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우리를 남쪽 끝으로 초대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제는 건물끼리 조화로운 것이 무엇일지도 궁금해집니다. 작가 윤광준은  내가 사랑한 공간들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소개해줍니다.


시대가 바뀐 지금도 주변과의 조화를 위한 고도 제한은 여전히 필요하다. 높이 제한 건물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은 하나다. 미술관은 넓고 납작하며 땅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바깥에서 보면 높이감이 도드라지지 않는 긴 건물로 보이는 이유다. 미술관 어디서 보더라도 다른 공간을 짓누르는 오만함이 느껴지지 않아 좋다. 자신의 존재감마저 지워 주변을 돋보이게 하는 이토록 겸손한 건축물은 찾기 힘들다.


높이를 낮춘 것을 시작으로, 추가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옛 건물들과 건축적으로 교감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 재료, 공간 곳곳이 만드는 장면 등으로 조선시대 한옥 건물과 일제강점기 근대 벽돌 건물을 ‘짓누르지’ 않은 것이죠.


안타깝지만, 앞에서 말한 조화로움은 특히 도심에서 디자인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주변에 이미 세워진 건축물들이 있을 테니까요. 결국 아무리 좋은 열린 공간이 있다고 해도 시야를 가로막히기 일쑤입니다.


마치 해일이 덮치기 직전의 모습 같습니다.



조화로운 경관을 평가하는 나머지 측면은 '자원'입니다. 도시공간 연구자 박현찬과 정상혁은 누구를 위한 높이인가에서 도시의 경관은 "어느 때라도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즐길 수 있는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높이만 낮추는 게 아니라, 낮은 건물들 사이에서도 하늘을 비롯한 주변 환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정교한 배치가 필요하다는 거죠. 물론 이들이 중점을 두는 것은 초고층 아파트 문화입니다. 조망권은 높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초고층 아파트의 답답함을 조망하지 않을 권리"도 함께 생각해 보자고 합니다.

같은 책 후반부에는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조명래의 기고글이 실려 있습니다. 그는 경관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에 주목합니다. "주변과 조화되고 대화하는 높이로 건물을 지어야 한다면, 건축물의 높이는 우리 모두가 향유하는 가치재"라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간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 간의 조화, 그리고 서로 다른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조화 역시 중요해 보입니다.


당연히 어울림의 기준이나 공공재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가가 설계한 디자인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에는 의뢰인의 선택을 따라야 하고요(건축가에게 전권을 넘겨주는 경우는 거의 없겠죠). 게다가 사고파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거래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가치를 얘기하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울림'이라는 측면이든 '자원'이라는 측면이든 전문가와 시민들의 비평이 필요한 겁니다. 디자인의 공적인 측면을 사회적으로 고찰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을 뽐낼 필요도 있겠지만, 때로는 숨은 듯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건축물에게(그런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따라 높이가 비슷해지기도 합니다. 25층짜리 건물도 있고 66층짜리 건물도 있습니다. 이 지점의 이 시선에서는 건물들이 전반적으로 낮게 분포되어 있어서 하늘을 즐기기 좋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갑자기 거대한 물체가 튀어나옵니다. 이 물체는 애초에 하늘이 펼쳐지는 이곳의 장점과 조화로울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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