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공급, 소비, 교류, 삶
좋은 뷰 찾기에 몰두하던 어느 날, 새로운 생각을 안겨준 광경이 있습니다. 바로 문화체육센터 1층 로비에 있는 북카페입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자리를 찾아다닐 수 있고 보드게임도 할 수 있는 데다가, 어른들이 머물 수 있는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마다에게 필요한 공간이 다르겠구나’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거죠.
얼마 전 물놀이를 좋아하는 조카를 데리고 체육센터 수영장에 갔더니, 하루에 50분만 이용할 수 있고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모든 레일에 사람이 가득하더군요.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집 근처에 공원이 필요하고, 지하철역이 필요하고, 저렴하고 여유롭게 수영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나에게 필요한 공간을 하나둘 모으다 보면 거주지(활동지)로서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게 되겠죠.
개개인에게 필요한 공간과 더불어 사람들을 두루 포용하는 공간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 그리고 서울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언제나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자릿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쉴 곳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특히 여름에,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남으면 보통은 카페 같은 시원한 곳에 가죠. 하지만 냉방이 되는 실내, 혹은 그보다는 덥더라도 바깥 어딘가 그늘 밑에서 잠시 앉아 있을 곳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청 로비입니다. 더운 날에는 에어컨을 튼 실내 공간이 반갑습니다. 물론 에너지와 환경 문제도 고려해야겠지만 말이죠.
어느 무더운 날, 시원한 대형쇼핑센터를 두고 사람들은 의자와 그늘을 찾아서 밖으로 나옵니다.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날씨가 좋을 때도 걷다가 쉬기 좋은 곳이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특정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필요한 공간마저 부족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어떤 건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겠죠. 예를 들면 공식적으로 상을 주는 행위가 있겠네요. 수상작을 선정하는 일이 얼마나 공정하고 의미 있는지 평가할 능력은 제게 없지만, 건축가와 직간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일반 시민들이 관심 가져 볼 만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도 (서울시민은 아니지만) '제42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수상 후보작 건축가 공개 발표회'를 유튜브로 시청했습니다. 건축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심사위원들과 질문을 주고받기도 하더군요. 여기서는 그날 나왔던 이야기들 중 주거와 생활양식, 그리고 커뮤니티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앞에서 말한 서울특별시 건축상 후보 건축물입니다. 초소형 숙소, 카페, 식당, 세미나 공간, 작업 공간 등이 모여 있습니다. 이곳은 '공유복합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위 공간을 조성한 건축가는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커뮤니티 빌리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제가 둘러봤을 때, 조용히 작업하는 개인도 많았지만 다양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행사에 참여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있기도 하더군요. 그의 바람대로 커뮤니티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걸까요?
한 심사위원은 상업시설이 주가 된 공간이 과연 '커뮤니티 빌리지'라고 불릴 수 있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이곳은 멤버십에 가입하거나 비용을 내야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자원이 많습니다. 소비를 위한 이벤트로서 복합시설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커뮤니티와 마을이라는 개념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초소형 주거와도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여기서는 집처럼 느끼게 해주는 요소를 들여놓을 최소한의 공간도 없는 곳을 초소형 주거라고 정의합시다). 심리학자 폴 키드웰은 『헤드 스페이스』에서 초소형 주거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주장을 소개해줍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시 전역에 있는 다른 공간(예컨대, 쇼핑몰, 레스토랑, 술집, 카페 등)이 거실과 부엌의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 또한, (중략) 개인적 소유물을 진열할 공간도 별로 없다. 집이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정체성은 도시 공간 전체를 통해 표출된다.
이들을 '도시 유목민'이라 부르는 건축가 이토 토요는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자신과 공명하는 도시 내부의 문화적 아이콘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라고 멋있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은 결국 피상적이고, 유행에 휩쓸리고, 삶의 흔적도 묻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게다가 그런 문화적 아이콘들은 "예술적이고 사회적인 문화 요소보다는 상업적인 문화 요소를 반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건축학 조교수 마이클 갬블도 소형 주거를 둘러싼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좁은 방을 떠나 원기를 회복시켜 줄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저 쇼핑몰을 돌아다니거나 커피 값을 지불하고 인터넷을 사용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녹지와 공공건물들을 포함한 훌륭한 공공장소가 집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거죠.
라이프스타일의 문제일까요, 지출 능력의 문제일까요? 위와 같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면 그 수요에 맞게 건축물을 공급해야 할까요? 아니면 건축으로 특정한 가치를 제안해야 하는 걸까요?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건축이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