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가치는 누가 부여할까?
제품은 제 기능을 해야 합니다. 신발은 신고 다닐 수 있어야 하고, 자전거는 잘 굴러가야 합니다. 물론 물건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면 원래 기대했던 기능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발에 흙과 꽃을 담거나, 자전거 손잡이를 문 손잡이로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도서관 의자 혹은 바깥에 있는 벤치는 어떨까요? 카페 의자가 불편한 건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한 손님이 오래 머무르는 것보다 여러 손님이 잠깐씩 머물기를 바랄 테니까요. 하지만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아야 하는 열린 공간의 의자는 철저하게 제 기능(앉아 있기)을 수행해야 합니다. 특히 도서관은 다양한 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는 일단 편해야 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니까요.
거리에 있는 의자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앉을 수 있어서 다리가 편한 것뿐 아니라, 편하게 감상하고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야 하는 거죠. (제한속도가 높은) 도로 바로 옆에 있거나, 매력이 없는 건물 앞에 딱 붙어 있거나, 앞사람과 너무 가까이 있게 되면, 그 의자는 사회적 기능은 못하고 물리적 기능만 하게 됩니다. 물론 내부와 달리 외부 환경을 다루는 일은 운이 좋아야 합니다. 보행로 자체가 너무 좁거나 주변 환경이 삭막하면 손 쓸 도리가 없겠죠. 이 말은, 편하게 감상하면서 머무를 수 있는 벤치가 (어디에 살든 접근하기 쉽게)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충분히 고려해서 도시 곳곳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계단 한쪽이 나무판으로 덮여 있고 중간중간 방석도 있다면? 이제부터 그 자리는 편한 의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다리를 옆으로 비틀어야만 앉을 수 있다면(발을 놓을 공간이 너무 좁다면), 훌륭한 자리라고 볼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혜롭습니다. 신발을 벗고 벽을 등받이 삼아 몸을 돌려 앉았네요.
자동차를 위한 도로. 도로 소음을 막기 위한 방음벽. 그 사이에서 소음을 끌어안은 삭막한 길. 그 와중에 가로수는 보행자를 도로 쪽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벤치. 저는 아직도 저 벤치가 전봇대 옆에 놓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공간의 성격에 따라 갖추어야 할 기능도 생각해 봅시다. 이용자(방문객) 입장에서 보면 청사와 주민센터는 행정 업무를 처리해 주는 곳이고, 지하철역사는 지하철을 운행하는 곳이고, 성당은 종교의식을 행하는 곳이고, 공개공지(건축물이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공개공간)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임무를 해내지 못한다면 이 공간들은 기존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기차역과 철도가 전시관과 공원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당연히 한 가지 기능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재밌는 것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의도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부터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이때부터는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 속성이 유지됩니다. 따로 신청 절차 없이 버스킹을 하는 장소가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재정의한 공간에는 생태학(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이 생기는 거죠. 생태철학자 신승철은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에서 각각 떨어져 있는 가로수 100그루보다 숲을 이룬 50그루의 나무가 항상성이 더 강하다고 말합니다.
(숲을 이룬) 50그루의 나무는 그저 산술적 합으로서의 나무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내부 환경을 능동적으로 조성하여 새, 벌레, 미생물, 버섯, 동물 등의 부수효과를 만들어내고 생산하고 창조합니다.
청사 외부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늘도 있고 풍경도 좋아서 앉아 있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행정시설 이상의 기능을 의도한 공간인 거죠.
지하철역사 내부 정원입니다. 이동을 위한 통로이면서 휴식도 가능한 쉼터입니다. 이곳 외에도,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예전보다 많은 역에 생긴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각자의 이유로 머무르다 나오겠죠? 이날은 결혼식이 있어서 못 들어갔네요.
공식 흡연구역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이미 이곳을 흡연구역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환경을 능동적으로 생산한 사례이면서 동시에 여러 얘깃거리를 던져줍니다.
업무시설이 몰려 있는 동네에서는, 점심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좁은 인도를 따라 줄지어 담배를 피웁니다. 보행자들은 그 연기 속을 헤쳐나가야 하죠. 그래서 이곳은 담배 연기와 보행자가 멀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 긍정적으로 볼 수만도 없습니다. 공공 공간을 특정 집단이 점유하는 현상도 바람직하지는 않으니까요.
아무도 공원에서 할 일을 정해주지 않습니다. 삼가 달라는 행동 몇 가지를 시설관리 주체가 안내할 뿐이죠. 돗자리, 도시락, 비둘기, 강아지, 공, 연, 자전거, 그리고 사람들이 날마다 익숙하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