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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롭 Dec 31. 2023

자기답게 살지 못하는 죄

청평사 가는 길 2

세차게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산속으로 들어가다 보니 계곡 아래 너럭바위 위에 한 여인상이 있었다. 자기 몸을 휘감은 뱀의 머리를 한 손에 바치고 애처롭게 뱀의 눈을 바라보는 공주.


청평사의 전설에 따르면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중이 중국 공주가 천하일색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번 보고 싶어서 궁궐 밖에서 서성이다가 첩자로 오인되어 잡혀 죽은 후 상사뱀으로 환생했다. 상사뱀은 공주가 잠든 사이 그 몸을 휘감았고, 궁궐에서는 온갖 방법으로 상사뱀을 떼어내려고 시도했으나 효험이 없었다. 공주는 궁궐에서 쫓겨나 방랑하다가 금강산으로 가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청평산에 이르게 되었다.


공주상의 안내판에 당태종의 평양공주라고 되어 있지만 청평사 자리에 영현선사가 맨 처음 백암선원을 창건한 시기는 973년(광종 24)이다. 그곳에 절이 있던 시기를 이처럼 가장 올려 잡더라도 당태종(599∼649)의 공주라면 시기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원순제(1320∼1370)의 공주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공주가 묵었다는 굴이며, 몸을 씻었다는 탕이며, 상사뱀이 공주에게서 떠나간 후 공주의 나라에서 보답으로 세워주었다는 삼층탑도 있지만, 조선 문인들의 유람기에는 공주 설화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공주 설화는 후대에 절을 신성화하고 부처의 영험력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궁금하여 상사뱀 설화 연구 자료를 보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목적에서 불교 상사뱀 설화가 생성되고 활용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첫째 중의 파계를 경계하고 수행을 돕기 위해, 둘째 대중에게 불교 교리와 사상을 이해시켜 포교를 쉽게 하기 위해, 셋째 부처의 영험성을 드높여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상사뱀 설화의 업(業) 설화적 고찰」참고)


그나저나 포승줄에 묶인 듯 상사뱀에게 몸이 휘감겨 전신이 결박된 채 청평사까지 온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애원하는 얼굴로 뱀의 눈을 바라보는 공주상을 대하니 뱀을 몸에 두른 또 다른 여인이 떠올랐다.『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에서 본 폰 프란츠 폰 슈투크의 <죄>에 나오는 여인. 그림 속 여인은 뱀의 눈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이라면 누구의 눈이든 눈독 들이듯이 본다. 뱀을 목도리처럼 둘러 자신을 장엄한 채 매혹적이고도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여인은 이렇게 질문하는 듯하다. 당신은 모든 열망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 당신은 이브의 유혹을 완전히 거부할 수 있습니까?”<죄> 속의 여인의 마음을 읽는 듯한 정여울의 질문에 대답하려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여인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그림을 바로 볼 수가 없다. 여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보다도 품은 마음을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듯이 목에 두르고 있는 뱀 때문에. 뱀이라면 설령 그림일지라도 나는 기겁을 하니까. 어쩌면 내 안에는 유혹과 열망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을지 모르는데.


어쨌거나 한 몸인 듯 절대 떨어지지 않는 상사뱀이라니. 아, 정 그리운 마음이 징그러운 그토록 끔찍한 사랑을 상상한다. 그리고 진저리 친다.‘정 그리운’이란 글자에서 점 하나를 빼고 또 점 하나를 찍으면 ‘징그러운’이란 글자로 바뀌어 버리는 것처럼 극단적인 사랑과 죽어도 끝나지 않는 사랑의 윤회를. 그런데 그 유혹과 열망의 마음이 한순간 사라지기도 하는지. 구성폭포 아래서 공주는 상사뱀으로부터 일단 놓여난다.


다채로운 소리를 내는 물소리에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 정화되어 눈물이 불쑥 나온 것처럼 상사뱀도 욕망의 어느 부분이 물소리에 정화되어 모르는 사이 느슨하게 풀어진 것이 아닐까. 뱀을 허물처럼 벗어놓고 공주는 마침내 본연의 모습으로 절 문 앞에 이르러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에 몸을 씻고 자신이 모르는 죄와 열망과 유혹의 마음마저 씻어 내고 가사불사의 공덕을 지었으리라. 순식간에 공주를 놓았는지, 놓쳤는지 상사뱀은 폭포 아래에서 공주를 기다리다가 돌아오지 않는 공주를 찾아 절 앞까지 왔으나 회전문(廻轉門)을 넘어서지 못하고 죽었다. 중생들이 윤회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회전문에서 죽은 상사뱀은 다시 윤회의 굴레에 매이고 공주는 자신을 가둔 상사뱀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전설을 간직한 청평사.


회전문을 향해 뱀처럼 구불거리는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몸을 휘감은 뱀은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 아닐까 하고. 마음에 기생하여 자신을 이끌어가되 진정한 자아를 꼼짝 못 하게 만들어 버리는 부귀공명으로 치달리는 욕망. 그러니까 공주 설화는 결국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상징적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헛된 욕망의 지배를 받아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죄니까. 자기답게 살지 못하는 죄.


창세기에서 뱀은 이브에게 죄를 짓도록 하는 유혹의 화신이지만 불교의 관점에서는 “윤회와 업의 상징으로 전생에 악업을 많이 지은 인간이 환생하는 짐승이다.”(「상사뱀 설화의 업(業) 설화적 고찰」) 이러한 뱀을 옛 문인들은 탐관오리나 악독한 것에 비유하곤 했는데, 그 생명체에게서 살신성인의 면모를 발견한 남다른 인물도 있다. 바로 생육신으로 만년에 청평사에서 자적한 김시습. 그가 젊은 시절 경주 금오산에 머물 때 백화사(白花蛇)를 보고 지은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가상하다!           


嘉爾稟形雖至毒

가상하다 네 모습 징그럽지만

殺身摩頂便成仁

죽어서 온몸 갈아 인 이루니

蜿蜓得意椒陰裏

산초나무 그늘에서 득의하나

時聽跫音驚俗人

때로 속인 발소리에 놀라네


김시습, <백화사白花蛇>          



뱀은 모두를 달아나게 할 만큼 징그럽기 짝이 없는 형체를 가지고 있지만 정약용이『여유당전서』에서 말했듯이 백화사는 관절통과 마비증을 고치는 귀한 약재였다. 그러니 자기 목숨을 바쳐 사람을 이롭게 하는 백화사의 일생을 요약하자면 살신성인 그 자체다. 의리를 삶보다 중하게 여긴 지사(志士)가 드문 현실에서 김시습은 그러한 지사의 면모를 뱀한테서 발견했으니 절로 감탄사가 나왔을 텐데. 백화사가 사람을 위해 자진한 것은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 죽음으로써 사람을 살려내니 가상한 의리를 지녔다고 보는 것이다. 김시습의 특별한 시선은 그 자신이 살신성인을 이상으로 품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자기 안에 그러한 생각이 없다면 보아도 보이지 않을 테니까.


김시습은 생육신으로 살수록 삶이 죽음보다 편치 못한 사태를 체감했을까. 모두가 부귀공명으로 치달려가는 세속과 거리를 두고 그는 숲 속에서 자적한다. 그러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산초나무 그늘에서 꿈틀거릴 때 득의만만한 백화사. 하지만 좋은 약효로 인해 그것을 구하려고 안달인 이들에게 끝내 잡혀 죽을 운명이다. 백화사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기겁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시습도 이와 다르지 않은 마음은 지녔는데, 세속과 절연하려고 출가로 신분까지 바꾸었지만 세조의 조정에서 불경 번역의 이유로 자신을 활용하려고 불러대고 있었다.


때가 되면 세상에 나가 자신을 펼치려고 하였으나 그런 때는 오지 않았다. 세상은 늘 불의가 횡행하고 있었으니까. 환속한 뒤 결혼한 김시습은 일 년 만에 아내와 사별하고 청평산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그의 소설 <만복사저포기>에서 아내가 죽은 뒤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다고 하는 양생처럼.


김시습이 살던 세향원(細香院)은 김상헌이 말한 대로라면 청평사의 남쪽 골짜기에 있었다. 1635년(인조 13) 그가 청평산을 유람할 당시 무너진 상태이기는 했지만. 세향원의 이름을 본뜬 세향다원이라는 찻집이 영지(影池)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그 자리가 김시습의 세향원이 있던 언저리라고 청평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1700년대에 청평산을 유람한 서종화의 <청평산기(淸平山記)>에 따르면 세향원의 터는 현재 공주탑으로도 불리는 삼층탑으로부터 수십 보 거리에 있다.


거의 천 년 전 남들이 추구하는 것을 다 버리고 청평산에서 자적한 이자현을 사모한 후인 중 삶으로 그를 추종한 사람은 김시습인 것으로 보인다. 이자현이 도를 즐기는 노래를 부르면서 “알아들을 사람이 없네”라고 했다면, 사 백여 년 뒤 김시습은 <청평사>에서 “도를 즐기는 시편으로 이치를 궁구하는데 이자현 선생 불러일으킬 사람 없네”라고 탄식하며 이자현을 그리워했다. 도를 즐기는 자신의 시를 함께 이야기할 유일한 사람. 이자현이라면 자기 마음을 알아줄 테니까.        

   

어떤 객이 청평사에 찾아와    有客淸平寺

봄 산에서 마음대로 노닌다네 春山任意遊

새 우니 외로운 탑 고요하고   鳥啼孤塔靜

꽃은 떨어져 시내에 흐르네    花落小溪流

맛난 채소 때를 알아 자라나고佳菜知時秀

향긋한 버섯 비 맞아 부드럽네香菌過雨柔

시를 읊조리며 선동으로 드니 吟行入仙洞

내 평생의 시름이 사라지네    消我百年愁

김시습, <어떤 나그네有客>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서야 소리라고는 새소리뿐인 경내가 얼마나 고요한지 깨닫는다. 세속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깊은 산속 숨겨진 땅에도 봄꽃은 피고 져서 흩날리는 꽃잎이 시냇물에 떠내려가면 그것을 본 세상 밖의 또 어떤 객이 꽃잎이 흘러간 시내를 거슬러 청평산으로 들어올지 모른다. 한 어부가 복사꽃이 흘러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갔다더니 별천지가 있더라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길을 떠나 방랑하던 김시습이 <객로(客路)>에서 “도화원(桃花源)은 어디인가? 홀로 서서 흘러가는 시내를 보네”라고 읊조렸듯이, 그는 도화원과 같은 이상향을 찾고 있었다.


사실 김시습은 젊은 시절에도 청평사에 온 적 있었다. 사십 대 후반에 마침내 다시 찾아든 이곳에서의 생활상은 “마음대로 노니는 것.”다른 말로 하자면 억지로 하는 게 없는 무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때를 알고 자라나는 맛난 채소와 비를 맞고 부드러워지는 향긋한 버섯 등 하늘과 땅이 무위로 다 이루는 경계에서 김시습은 “스스로 무궁한 청복(淸福)을 누리니 명리(名利)는 이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청복이라고 할까?


정약용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이른바 복이란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외직으로 나가서는 대장기(大將旗)를 세우고 관인을 허리에 두르고 풍악을 잡히고 미녀를 끼고 놀며,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초헌(軺軒)을 타고 비단옷을 입고 대궐에 출입하고 묘당에 앉아서 사방의 정책을 듣는 것, 이것을‘열복(熱福)’이라 한다.


깊은 산중에 살면서 삼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으며, 맑은 샘물에 가서 발을 씻고 노송에 기대어 시가를 읊으며, 당 위에는 이름난 거문고와 오래 묵은 석경(石磬), 바둑 한 판, 책 한 다락을 갖추어 두고, 당 앞에는 백학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화초와 나무 그리고 수명을 늘리고 기운을 돋우는 약초들을 심으며, 때로는 산승(山僧)이나 선인(仙人)들과 서로 왕래하고 돌아다니며 즐겨 세월이 오가는 것을 모르고 조야의 치란을 듣지 않는 것, 이것을‘청복(淸福)’이라 한다.


사람이 이 두 가지 중에 선택하는 것은 오직 각기 성품대로 하되, 하늘이 매우 아끼고 주려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청복(淸福)이다. 그러므로 열복을 얻은 이는 세상에 흔하나 청복을 얻은 이는 얼마 없는 것이다.”


김시습은 하늘이 자신에게 후하게 내린 청복(淸福)을 새삼 깨달은 후 “맥국[춘천]에 잠시 깃들여 있지만 서울을 꿈엔들 잊으랴”라고 한 것처럼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뭔가 해보려는 유위한 마음, 곧 열복(熱福)을 구하는 욕심을 내려놓는 듯하다. 그래서 산중의 도인에게 “늙어가자 그윽한 정 더욱 깊으니 임천(林泉)에서 끝내 첫 마음 저버리지 않으리”라고 말하기에 이르니. 마음에 남은 말들을 시로 읊조리며 선동 계곡을 따라 오르면 청복을 얻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린 이자현의 식암으로 갈 수 있다. 사람은 가고 없으나 자취는 거기 남아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대로 진정한 자신으로 살다 간 한 영혼을 찾아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청평산에서 마음대로 노닐 때 좌절이며 실연이며 번뇌로 불어난 평생의 시름이 사라지는 만큼 그는 자신과 하나가 되어가고.


 나는 김시습이 세향원에서 청평사로 오르내렸을 그 길을 따라 세향다원과 템플스테이 한옥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맞은편 계곡 위의 평평한 땅에 세워진 작은 돌탑들. 간절한 발원으로 세워진 수많은 돌탑이 청평사 가는 길을 장엄하고 있는데, 모난 돌들이 어떻게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붙어 굳건하게 서 있는지 신기하면서 혹시라도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기척에 허물어질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그 많은 돌탑은 누가 세웠을까. 나같이 하루 청평사에 닿은 사람이거나 며칠 절에 머물러 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누구든 갈증을 느끼듯 누구든 갈구하기 마련이니까. 돌탑을 쌓는다면 돌을 하나씩 올릴 때마다 나는 무엇을 기원하고 싶은가. 정작 탑을 쌓을 때 열복이든  청복이든  딴생각을 했다가는 끝내 탑을 세우지 못하리라. 그날 거기서 돌탑을 세울 엄두를 내지 못한 나는 지금 여기서 글탑을 세우기로 한다.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점점 내가 되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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