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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롭 Oct 27. 2024

한 사람을 위한 자리

이자현의 유적을 찾아서 2

벼랑에 하얗게 매달린 얼음장 아래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무명의 폭포 맞은편에는 높다랗고 평평한 바위. 명찰처럼 달고 있는 안내판에 적힌 이름은 척번대(滌煩臺). 번뇌를 씻는다는 뜻을 가진 바위는 폭포를 관상하기에도, 명상하기에도 맞춤한 듯한 자리에 놓여 있었다. 바위를 자연스럽게 제자리에 배치하는 솜씨라니.



척번대(滌煩臺)



보이지 않는 손이 솜씨를 부려 마련한 바위 위에 가부좌한 이자현은 천 년 전에 떠나가고. 삼백 년 만에 그가 다시 돌아왔는지 또 한 사람 김시습이 찾아와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떠나가고. 그 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자취를 찾아 많은 이들이 오고 갔으나 바람이 앉았다 가듯 사라졌을 뿐.


거대한 바위는 갈라지고 그 위에 판자 모양의 돌들이 포개져 있는 척번대. 시간을 첩첩이 쌓은 듯 바위가 층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한번 앉아봐도 될까.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여럿이 앉을 수 있을 만큼 커 보였는데, 그 위에 올라서니 딱 한 사람이 앉을 만한 크기였다. 그러니까 척번대는 한 사람을 위한 자리. 제 몸이 다 부서지도록 기다릴 것이다. 단 한 사람을. 다시 천 년이 흘러 천 겹으로 갈라진다 해도 거기 남아 있을 바위. 단 한 사람을 위해.



척번대(滌煩臺)



눈이 내려앉아 젖은 바위가 눈물에 젖은 듯 보였다. 아직 주인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사이 잠시나마 척번대를 차지하고서 고개를 드니 눈 그친 하늘이 눈을 맞추고. 정면을 바라보자 폭포수가 거침이 없었다. 눈을 감으니 개울물이 가슴속으로 흘러들고, 솔바람이 뼛속까지 스미는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에 낀 때가 떨어져 나가 말개지는 기분. 본성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 속에서 내가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종국에 망각한 자신을 되찾아 대자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해도 척번대를 오래 누릴 수 있는 이는 천 년에 한 사람. “명예의 길에 열중한 많은 이, 누가 여기서 늙을 수 있으리오.” 그렇고 말고. 구사맹이 척번대에 올라 중얼거린 때나 그로부터 오백 년이 흐른 지금이나 사람들 마음이 쏠리는 방향은 그리 다르지 않으니. 거창한 욕망을 추구해서만은 아니다. 사는 일에 골몰하느라 잠깐의 틈조차 내려면 벼르고 별러야 하니까.


문장ㆍ도교ㆍ불교ㆍ의약ㆍ음양술ㆍ말타기ㆍ활쏘기ㆍ거문고ㆍ바둑. 아, 다 적기에도 숨이 가쁜 이 많은 것들에 능했다는 곽여. 그도 관동 안찰사로 근처에 왔을 때야 청평산을 찾았다. 물소리도 산색도 바뀌는 봄. 걸을 때마다 늘어뜨린 옥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옷차림으로 산속으로 들어온 까닭은 친구 이자현을 만나기 위해서. 두 사람은 과거에 함께 급제했으나 한 사람은 벼슬길로, 한 사람은 베옷 차림으로 선도(禪道)의 길로 갈라져 삼십 년이 지난 때였다.


이자현이 청평산으로 떠나며 다시는 서울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누구라도 산으로 오지 않으면 그를 만날 일은 없을 터였다. 벗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가슴에 넘쳐흘렀을 테지만 정작 마주하고는 별말이 없는 두 사람. 처음 만나 인사한 뒤 30분간이나 같이 묵묵히 앉아 있다가 오늘 저녁은 퍽 재미나게 놀았다 하고 헤어졌다는 칼라일과 에머슨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들도 시를 주고받았을까?


이자현과 곽여 사이에 시가 놓여 있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지만 가슴에 담긴 말 가운데 정수만을 골라 침묵과 함께 엮은 시. 두 사람만 알았을 마음 한 자락이 여기에 있다.



淸平山水冠東濱  

청평의 산수는 해동에서 으뜸인데

邂逅相逢見故人  

여기서 뜻밖에 벗을 만나 마주하네

三十年前同擢第  

삼십 년 전 같이 과거 급제했는데

一千里外各栖身  

천리 밖 멀리 따로 깃들여 살았네

浮雲入洞曾無累  

골짜기에 드는 뜬구름 매임이 없고

明月當溪不染塵  

시내 비추는 달 홍진에 물들지 않네

目擊忘言良久處  

보고도 말을 잊고 한참 앉았노라니

淡然相照舊精神  

오랜 친구의 담박한 심정 알겠네

곽여, <청평 이거사에게 주다 [贈淸平李居士]>     



『고려사』에 따르면 예종은 자신의 부름을 거절하고 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자현에게 그의 동생 이자덕을 보내 설득하면서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를 하사했다. 끝내 지금의 서울인 남경 행재소에서 이자현을 만났을 때 물었다. 천성을 수양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일은 곽여도 들어서 알고 있었을 테지만, 직접 마주한 순간.


웃으며 벗을 맞이했을 이자현. 정처 없는 구름처럼 자유로워 보이고 온몸으로 발산되는 본성의 청명한 기운은 밝은 달 같았으리라. 곽여의 가슴에 쌓인 말들은 그를 대하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절로 눈물이 났을지도. 내가 처음 만난 한 어른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눈물이 흘렀던 것처럼. 곽여는 할 말을 잊고 달을 올려다보듯 그를 보았을까. 밝은 달 같은 거울에 마음을 비춰보았을까. 마주 앉아 말이 없는 곽여가 애초 물으려 했던 말을 이자현은 묵묵히 알아듣고 시로 답했다.


 

暖遍溪山暗換春  

따뜻한 기운이 산수에 퍼져 가만히 봄으로 바뀌는 날

忽紆仙仗訪幽人  

신선의 의장 드리우고서 홀연히 산사람 찾아주셨네

夷齊遁世唯全性  

백이숙제는 천성을 보전하기 위해 세상 피한 것이요

稷契勤邦不爲身  

직과 설은 일신 위해 국사에 부지런한 것이 아니지

奉詔此時鏘玉佩

 왕명을 받들고 온 이때 쟁쟁 패옥 소리 울리는데

掛冠何日拂衣塵  

어느 날 벼슬 그만두고 옷의 먼지를 털어내려는가

何當此地同棲隱  

어찌 반드시 이곳에 은거하여 함께 살아야 하리오

養得從來不死神  

본래부터 가진 불사의 정신을 기를 수만 있다면     



왜 산에 사는가 묻는다면? 세상에서 청절로 이름난 백이와 숙제는 왜 세상을 피해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먹고살았을까. 그 마음에 견줘 보면 자신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는 것. 오직 진정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이유는 그뿐. 벗은 왜 벼슬한다고 여기는가 묻는다면? 태평성대를 이룩한 순임금의 어진 신하 직과 설이 국사에 애썼듯이 곽여가 벼슬을 하는 까닭도 단지 일신의 부귀영화 때문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이리라는 것.


각설하고, 그대 언제 은거하려는가? 이자현이 곽여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함께 살자는 말이 아니다. 굳이 산속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 어디서든 자기 안에 깃든 불멸의 성품을 양성할 수만 있다면. 그때가 부디 늦지 않기를 바랐을 텐데. 이자현과의 만남이 곽여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을까. 시간이 흐른 뒤 곽여는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김해로 내려갔다. 1083년(순종 1) 급제한 이들 중에 고관은 아무도 없고, 이자현과 곽여 등이 모두 벼슬을 그만두고 처사가 되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해의 합격자 명부를 처사방(處士榜)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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