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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롭 Jan 19. 2024

이자현의 유적을 찾아서 1

계곡에 흘러내린 물을 끌어들여 이자현이 만든 거울. 천 년이 다 되도록 깨지지 않고 남아 있다. 그 거울은 물의 거울. 세향다원과 그 맞은편의 무수한 돌탑을 지나면 나타나는 네모난 못이 그것이다. 석축을 쌓아 만든 못 여기저기 장수거북의 등 같은 바위 다섯 개가 세월의 더께인 푸른 이끼를 덮고 수면 위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하늘로 치솟은 봉우리 하나가 어른거린다. 바로 청평사 뒤에 우뚝한 부용봉인데, 이자현이 수도한 견성암은 그곳에 있었다.


청평산 유람기를 남긴 김상헌에 따르면 산 중턱에 있는 견성암이 물에 비친다고 하여 ‘그림자 영(影)’자가 들어간 영지(影池)가 못 이름이다. 훗날 김상헌 가문의 외증손인 오원은 바람이 살랑거리는 화창한 날 견성암이 비치는 영지를 보고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해 청평사의 한 승려에게 견성암에 올라가 가사를 입고 춤을 추게 하고는 영지에서 그림자의 변화를 경이롭게 지켜본 일이 있었다. 그리고 춘천 부사 박장원이 영지에 거꾸로 비친 암자의 환한 창문으로 머리카락을 볼 수 있다고 했을 정도로 영지는 그렇게나 맑다. 우리의 본성도 그와 같아서 무엇이든 다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을 것이다.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이 구름처럼 가리고 있을 뿐.


영지 근처 바위에 어느 선사의 오도송(悟道頌)이 이렇게 새겨져 있다.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들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들이 사라지네. 이와 같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곳곳이 모두가 극락세계로구나. (心生種種生 心滅種種滅 如是俱滅已 處處安樂國)” 마음에 일어나는 것들은 지켜보는 것으로 사라지게 할 수도 있지만 겉모양을 정돈함으로써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김상헌의 증손 김창협은 영지와 자기 본성 중 어느 것이 맑은지 견줘보려고 할 때 소나무 사이에 정좌하여 의관을 정제했을 것이다.       



맑은 못 예부터 깨끗하고 투명해

淸池萬古只溶溶

연꽃이 물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네  

未許蓮花著水中

하늘이 비쳐 주는 부용봉 그림자

天遣玉峯來照影

승려는 그게 바로 연꽃이라 하네

僧言卽此是芙蓉

김창협, <영지에서 증조부의 시에 삼가 차운하여[影池 敬次曾王考韻]>)    

 

못에는 으레 연꽃이 있기 마련인데 영지에는 연꽃이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바위와 그림자뿐. 그런데 청평사의 승려는 이런 말을 한다. 영지 가운데 솟아 있는 부용봉이 바로 연꽃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부용(芙蓉)은 연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부용봉이 늘 비치는 영지에는 사시사철 연꽃이 피어 있는 셈이다. 어디 사시사철만인가. 천년토록 지지 않고 있다.  


한겨울에도 영지에 우뚝한 연꽃을 보며 누구나 마음의 연못 가운데 피어 있을 연꽃을 생각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오만 생각에 물들지 않는 고고한 연꽃을. 자신이 관심을 주든 주지 않든 한결같은. 그 연꽃이 피어나는 마음은 영지처럼 본래 맑다. 이자현은 우리가 가진 그 성품을 염두에 두어 암자 이름도 성품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견성(見性)이라고 짓고, 또 자기 성품을 비춰보기 위해 물의 거울인 영지를 조성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림자라는 뜻을 가진 영지에 비치는 것은 곧 마음이라는 연못.


그 마음에 핀 연꽃을 발견하고 발현하는데 일생을 바친 이자현. 나답게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 그가 수도한 연꽃 봉우리 부용봉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볼 수 있을까. 오원은 승려를 부용봉에 올라 춤추게 한 다음 자신은 영지에 남아 그림자를 관찰했지만 나는 실체에 다가가고 싶었다.


선동교를 건널 때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산사가 가장 운치 있는 날이구나. 잘 왔다고 눈은 내리는가. 축복하는 듯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부처의 세계 앞에 놓인 계단을 다 오른 뒤 눈을 감았다. 윤회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회전문 앞에서. 절 앞으로 흘러가는 물소리를 오롯이 듣고 싶어서.


청평교에서부터 내가 길을 오르는 동안 반대 방향으로 흘러내린 물의 근원이 어디인지 모르나 물은 절 문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었다. 눈을 감은 순간 물이 나를 빙 둘러싸고 흐르는 듯 내가 선 땅이 섬이 된 것 같은 기분. 천 년 전 이자현도 그곳을 찾은 옛사람들도 느꼈을까.


그 자리에 서서 천 년의 시간을 거스르자 문득 소름이 돋아 나는 눈을 뜨고 뒤돌아 회전문을 넘었다. 그러면서도 오직 이자현의 유적을 찾는 데 관심이 쏠려 있었다. 견성암뿐만 아니라 식암을. 누구에게 길을 좀 물어보고 싶은데. 경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극락보전. 아미타불과 협시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신 불당에 오르자 불자들이 불기를 닦고 있었다. 내게 들어오라고 권하는 거사에게 식암과 견성암에 대해 물어보니 육이오 때 불타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고 했다.


이자현이 이름을 붙인 청평산은 왜 오봉산으로 바뀌었는지. 그 연유도 알고 싶었다. 육이오 이후 국토지리원에서 오봉산으로 등재했는지 모른다고, 산의 봉우리가 다섯 개여서 다들 오봉산이라 부르고 있지만 그네들은 모두 청평산이라 부른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천 년의 역사적인 유래를 가진 이름을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


절에서 사람들은 사십구재를 지낼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한편 나는 청평산에 오를 생각에 좀 긴장되었다. 자취로나마 이자현을 기어이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얼마 전에는 이정표에 의지해 그의 유적을 찾으려다가 허탕을 쳤다. 이정표는 식암 터와 ‘청평식암’이라는 이자현의 필적이 있는 곳으로부터 250미터나 떨어진 곳에 단 하나 있을 뿐이다. 그의 자취는 등산로에서 벗어난 지점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동 계곡에서 우왕좌왕하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끝내 찾아냈을 수도 있지만, 청평사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배 시간에 맞추려면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헛헛하나 어쩔 도리 없이. 그래서 이번에는 시간을 더 확보하려고 소양댐 선착장에서 첫 배를 탔던 것이다. 승객이 나 혼자뿐이지만 배는 제시간에 어김없이 출발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청평산을 유람한 옛사람을 길잡이로 삼았으니까.


내 외투 주머니에는 김상헌의「청평록(淸平錄)」과 김창협의「동정기(東征記)」가 있었다. 옛사람의 글을 보면 그들은 여행하면서 오래전 그곳에 머물다 간 선인을 생각하고, 또 흠모하는 문인의 유람기를 가지고 다니며 차운시를 지었다. 그러니 그들의 여행은 영적인 교류이며 추모의 방식인지 모른다. 어디를 무작정 가던 내가 그렇게 옛사람을 본받아 그들의 유람기를 챙긴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절에서 나올 때쯤 목탁 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절 뒤로 난 산길로 들어섰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또 언제 눈이 내렸는지 길의 초입에는 낙엽 위에 쌓인 눈이 녹아 질퍽거렸다. 계곡의 바위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채 얹혀 있었고 얼음장 밑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너무도 맑았다. 산을 오르는 동안 물소리를 줄곧 들었다. 끊임없이 소리를 내지만 마음을 씻어주는 소리를. 어떤 말소리가 그와 같을 수 있을까. 가능하지 않을지라도 내 말소리가 닮기를 지향하는 소리는 바로 그 물소리. 나는 상류로 거슬러 오르고 물은 하류로 흘러내리며 서로 어긋나고 있었지만 물과 내내 동행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행의 이름은 서천(西川)이다.     



서천 경치 좋다 예전부터 들었는데    

西川水石聞昔日

직접 보니 참으로 그윽하고 절묘하네  

我來目擊信幽絶

맑은 샘물 골짝에서 구불구불 흐르고  

淸泉出谷流蜿蜒

위로는 부용봉이 하늘을 찌르고 있네  

上有芙蓉峯揷天

진락공이 절집에 살 때 생각하노라니

 尙憶眞樂寄梵宇

흐르는 이 물 아껴 뜨락으로 삼았으리

愛此朝暮當園圃

고인은 지금 백골에 이끼가 돋았으니  

古人白骨今生苔

내 깊은 회포 누구에게 펼쳐 보이나   

我有幽襟向誰開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 동봉자 김시습  

令人却憶東峯子

또한 이 산속에서 고사리를 캐었지    

採薇亦曾此山裏

절세의 두 분 자취 짝하기란 어려워   

曠世玄蹤兩難伍

끊임없이 흐르는 저 물만 바라볼 뿐   

但看逝水無停住

김창협, <서천(西川)에서 증조부의 시에 삼가 차운하여[西川 敬次曾王考韻]>    


      

김창협이 서천의 물소리와 경치에 감탄하며 먼저 떠올린 인물은 진락공 이자현. 그가 세속 사람들이 바라 마지않는 부귀를 훌훌 버리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 살며 서천을 정원으로 삼은 것도 그 물을 사랑해서가 아닐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김창협은 서천에 반한다. 회포를 나누고 싶지만 자신과 그의 간격은 육백여 년. 그를 볼 수 없는 때 난 것을 아쉬워하다 문득 떠오른 또 다른 인물은 그보다 이백여 년 앞서 살다 간 동봉 김시습.


무왕이 천자인 주왕을 정벌하자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사리를 캐어 먹은 것처럼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을 때 김시습이 생육신으로 절의를 지키며 한때 은거한 땅도 바로 그곳 아닌가. 이자현과 김시습이 이 세상에서 살 곳으로 청평산을 선택한 까닭을 김창협은 서천에 당도하고서야 짐작하게 된 것이다. 자신은 절세의 행적을 따르지 못하고 그저 물을 보고만 있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서천의 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는 까닭에. 이자현과 김시습을 보는 듯 물을 바라볼 때 물소리가 언뜻 그들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돌다리도 두어 번 건너면서 눈이 녹지 않은 산속으로 점점 들어가는데 문득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흐르는 물을 따라 발걸음을 떼면 또 길이 나타났다. 보이는 것은 눈과 물과 돌과 나무뿐이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물소리와 간간이 그에 화답하는 듯한 까마귀 울음소리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눈이 내리는 소리라니. 눈은 그치지 않고 내렸으나 선동 계곡에서 그 소리가 들린 것이다.


누런 낙엽이 깔린 길 위에서 물과 눈 소리 속에 나는 아까부터 돌과 바위 많은 산길을 걸어 지금 들어온 곳이 마음속인가 싶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마음속 오지의 어느 골짜기를 오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멈춰 서서 그곳에 존재하는 고요와 평화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아, 나 여기 또 오고 싶다 하고 혼잣말까지 했으니. 이미 그곳에 있는데도.


평화가 깃든 마음의 풍경이란 바로 그와 같지 않을까. 내가 발을 디딘 그 계곡을 선동(仙洞)이라고 하는데 풀이하면 신선이 사는 골짜기다. 나는 거기서 그 골짜기 이름이 선동인 이유가 절로 이해되었다. “시를 읊조리며 선동으로 드니, 평생의 시름이 사라지네”라고 한 김시습의 심정도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리워한 내 마음을 스치듯 만난 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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