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같은 환하고 동그란 달 3
옷에 혼이 깃들어 있다! 중학교 담임 선생님은 옷을 서로 바꿔 입으며 되바라진 차림을 하는 날라리들을 야단치면서 말했다. 그 말로 날라리들 행동이 교정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받아들인 말은 머리에 똬리를 틀었다. 세수를 할 때도 머리를 감을 때도 다른 사람의 옷이 떠올랐고. 어떤 순간에도 누군가의 옷이 떠오르기만 하면 내게 다른 사람의 혼이 깃드는 것 같은 착란이 일어났다.
나도 내가 낯설었다. 정신과 의사 앞에 앉자 그녀는 내 증세를 강박신경증으로 진단했다. 처방해주는 약을 먹으면 내내 잠을 자야 했으므로 더는 약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의사 앞에 단 한 번 앉았을 뿐이다. 그 후 큰스님을 친견하거나 법문을 들을 기회가 생기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다니고는 했다. 엄마를 따라 다니면서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기를 열망했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O수련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엄마가 권하는데, 내가 마다할 리 없었다. 그 프로그램으로 의식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 이들이 많다고 들어서 하루라도 빨리 참여하고 싶었다. 이미 정원이 다 찼으니 수련원에서는 다음 회차에 참여하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기어이 신청했다. 제정신을 어서 되찾고 싶었기 때문에.
문경에 도착해 시외버스를 타고 어느 버스 정류장에 내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길을 걸었다. 가도 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고 모가 자라는 초록 논이 아득히 펼쳐진 길을. 땡볕이 내리쬐는 길 위에 나는 혼자였지만 그 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더라도 갈 마음이 있었다. 며칠만 지나고 나면 다른 내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었으니.
수련원이 자리한 곳은 외길의 끝. 거기 들어설 때 설레어 마음이 부풀었다. 길을 떠나는 나를 배웅하면서 엄마는 너무 기대하지 말고 다녀오라 당부했지만. 새로운 나로 재탄생하는 환희의 순간을 그리며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벌써 도착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남녀노소가 묵는 방에 있는 것이라고는 황토색 방석만 수십 장. 그것뿐이었다.
시계를 소지할 수 없으므로 시간을 감각으로 느꼈다. 언제 가장 기쁘고 또 화가 났는지, 메고 온 가방이 어디서 왔는지 같은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둥글게 앉아 돌아가며 나누고, 마주 앉아 서로에게 밥을 먹여 주고, 조를 짜서 연극을 만들어 공연하는 동안 사흘은 빠르게 흘렀다.
법사는 프로그램을 거기까지 진행하고도 내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파악했는지 쉬는 시간에 나를 따로 불렀다. “일 년 휴학하고 절에서 살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절은 내게 너무나 생소한 공간이고, 휴학을 하면 친구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나는 대로 대꾸했던가. 나는 절에서 보내는 일 년이 무엇을 품고 있을지, 내 인생에 무엇을 선사할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권유를 뿌리치고 싶었다. 일 년이 내게는 평생처럼 길게 느껴졌다.
날벼락 같은 제안을 받은 데다 그다음 순서로 진저리가 나는 생명체가 병에 담겨져 우리가 둥글게 앉은 원 안에 놓이자 달아나고 싶었다. 여름이면 내가 지나다니는 길가 풀 위로 그것이 쓱 나타나기 때문에 불안하여 집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오가는 길을 나는 걷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달리고는 했다. 나만이 아니라 대체로 혐오하는 그 생명체를 법사는 아마도 분별심을 타파하도록 하기 위해 활용했으리라.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뿐이랴. 진실로 호기심이 발동해서인 듯 다들 냄새 맡고 촉감을 느껴보기까지. 아! 의식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한 줄기 빛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견뎠다. 눈을 질끈 감고 악,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발악을 하며 마치 목걸이인 양 그것을 목에 둘렀으니.
최대한 용기를 낸 것이다. 그래도 분별심에 금이 가는 기미는 없었다. 깨달음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뱀이 드디어 물러가고 그 자리에 한 스님이 등장했는데, 오! 엄마를 따라간 법회에서 처음 수행자의 향기를 알게 해 준 스님이 아닌가.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스님이 자리를 잡자 사람들은 둥글게 보름달처럼 앉았다.
구석구석을 비추는 달빛처럼 스님이 가까이 있는 이부터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말을 걸었다. 출가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나도 곧 대답해야 할 것이었다. 할 말을 떠올리며 다른 이들의 대답을 듣는데, 들을수록 놀라 자빠질 것 같았다. 며칠 만에 다들 대오 각성했는가. 모두 출가할 수 있다니. 의식을 점검하는 스님도 놀랐을 것이다. 당장 머리를 깎을 수 있느냐고 재차 물어도 가능하다고 했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함께 며칠을 살며 한자리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으나 그들은 이미 이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모두 탈바꿈하는 동안 나는 뭘 했지? 도대체 발심이 되지 않는데, 이제는 내가 대답할 차례. 바라보기만 해도 신심이 나서 나도 스님처럼 되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나비 날개 같은 옷을 입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답하자 스님이 웃었다. 동그랗게 앉은 사람들도 웃었고. 자유는 정신의 날개. 고치의 시절을 통과해야 날개가 돋는 법. 아무래도 내 의식은 꿈쩍하지 않으므로 기대를 잔뜩 한 만큼 낙심했다.
집에 돌아가는 날 사람들은 꽃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 같았다. 날개가 돋는 겨드랑이가 간지러운 듯 내내 웃었다. 배웅하는 법사가 내게 한 번 더 절에서 살라고 말할까봐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끝까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돌아서는데 눈길이 내 등에 닿는 듯했다. 그의 말은 집에까지 따라왔다. 귀에다 대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통에 집에 온 지 이틀 만에 결국 항복!
다시 먼 여정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지낸 수련원 뒤 언덕에 자리한 암자로. 햇볕에 벌게진 얼굴로 오르막을 오르자 요사채 앞에 놓인 평상에 쭉 걸터앉은 수행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좀처럼 누가 올 것 같지 않은 곳으로 낯선 이가 들어서고 있었으니. 아직 삭발하지 않은 수행자들이 일을 하다가 그늘에서 쉬는 중이었다.
한눈에 봐도 앳된 여학생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내 사연이 궁금했을까? 그곳에 처음 발을 디딘 자신의 지난날을 떠올렸을까? 그들의 눈과 입이 소리 없이 내 등을 토닥이는 듯했다. 잘 왔어요, 장해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소리 없는 소리에 내가 고개를 숙이자 몇몇이 어서 오세요 하고 소리 내어 반겼다. 수련원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식사를 담당한 수행자 말고는 다 처음 보는 얼굴. 나는 마당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데 나보다 기껏해야 대여섯 살 정도밖에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큰 어른으로 느껴지는 수행자들. 그들과 나 사이에 한평생 같은 간극이 존재하는 듯했다.
수행자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며 마음을 정화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종일 집을 짓거나 풀을 뽑거나 요리를 하는 등 맡은 역할을 하며 마음을 관찰하고 나누는 것으로 노동을 마무리했다. 일과를 마치면 암자 반대편 숲 속에 설치된 천막에서 몸을 씻고 일찍 잠들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생활이었지만 어쩐지 그 생활이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날뛰는 마음과 함께 시소를 타듯 쿵덕거리느라 내면 풍경을 영화를 관람하듯 지켜보는 것이 어려웠다. 그 탓에 마음을 나누기가 난감했을 뿐.
대중 생활 일과가 빠듯했으므로 홀로 있을 시간이 별로 없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숨구멍 같은 장소가 필요했다. 그때마다 여자 방에 딸린 골방으로 갔다. 시렁 위에 수행자들의 짐이 있고 시렁 아래에는 책이 몇 권 있는 골방.
시렁 아래 앉으면 그나마 여유가 있지만 누우면 다리가 오므라질 만큼 작은 방이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있으니 태아가 된 것 같았다. 아늑함 속에서 엄마의 심장 소리 같은 내 심장 소리를 들었다. 한지를 바른 작은 문으로 스미는 햇살과 격자무늬 창살을 바라보면서. 그러다 어느 순간 방구석에 있는 책을 펼치고는 했다. 자궁 같은 골방에 있는 순간이 나는 제일 좋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머리가 멍하거나 복잡해서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그곳에서는 절로 책에 손이 갔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아무것도 없으니 일을 하지 않는 한 책을 읽는 것 말고는 할 게 거의 없는 환경이기도 했지만.
골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본 수행자가 말했다. 여기 있는 동안이라도 책을 읽지 말아보라고. 오직 마음에 집중해보라고. 그것이 바로 관찰하는 자세를 훈련하는 것이고 깨어 있는 방법이기 때문인데. 시키는 대로 해보는 것도 수행일 터인데. 그때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물어보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그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의문스러운 건 온종일 노동하는 일과가 수행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회의에 빠져 있었다. 내면의 갈등상태를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법사는 감지했을까. 하루는 점심을 먹고 내게 천배를 하라고 했다. 다른 수행자가 노동을 하는 동안 나는 방에서 절을 했다.
수행자들이 내가 절하는 방 앞으로 지나다니거나 평상에서 쉴 때도 내가 묵묵히 계속해서 절을 하자 등 뒤에서 그들이 대견해하는 것도 같았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할 때 힘내라고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처럼 끝까지 해내라고 나를 응원해주는 듯했다. 백팔배는 해봤지만 천배는 처음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보란 듯이 해냈다.
온갖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와중에 반나절에 걸쳐서 천배를 하고 성취감을 느꼈던가. 그것 말고 특별한 마음의 변화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자신을 재발견한 마음은 내 안에 남아 있다. 나는 그만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노동이라면 우리 과수원에서 해야지. 우리집에 일이 산적해 있는데 내가 왜 여기서 일하고 있지?
하산하고 싶어 나는 집으로 돌아갈 궁리만 그렇게 하고 있었다. 노동을 하든 뭘 하든 수행자는 매 순간 깨어 있는 사람. 그런데 수행자의 자세를 깨치지도 못한 그때. 발우 공양을 하는 아침. 발우를 앞에 놓고 큰 원으로 둘러앉은 수행자들에게 나는 개강이 닥쳤다는 핑계로 하직 인사를 했다. 겨우 보름 만에. 마음의 감옥에 갇힌 그대로. 깨어 있는 수행자의 생활로 나아가지 못한 채 암자를 내려오는데, 한 수행자가 나를 따라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