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교수가 귀국했고 다시 스터디를 시작했다고. 나는 교수가 귀국할 날을 염두에 두면서 논문을 완성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배의 말을 듣자 가슴이 내려앉았다. 학교에 가야 하는 아침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 마음이 그러할까.
“한낮을 울리는 산동네 매미 홀로 노래하다 때가 되면 높은 하늘 아래서 허물을 벗듯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허물 벗도록 노력하며 지내겠습니다.” 연구년을 보내려고 UC버클리 방문학자로 떠나는 교수를 전송하며 짧은 메일을 보낸 게 일 년 전.
떠나기 전에 교수는 산마루에 오르기 위해 지침으로 삼을 말을 선물로 주었다. “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서 우연하게 산길을 간다면 산에 오르더라도 원래 산을 알지 못한 것과 다름이 없다. 또 산마루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끝내 산마루에 오를 수 없다.” 학문을 등산에 비유한 이이의 말을. 뿐만 아니라 사마광의 말을. “산에 오름에 방도가 있다. 천천히 가면 피곤하지 않고, 평평한 곳에 발을 두면 넘어지지 않는다.” 두 학자가 말한 대로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보면, 어느 사이 높은 산 정상에 이를 것이라고 격려하며 각자 정한 산마루에서 만나자고 교수가 말했다.
지리산 종주를 하던 대학교 3학년 가을날이 떠올랐다. 산맥을 따라 걸으면서 천왕봉이 저 멀리 어른거릴 때마다 아! 내가 오를 곳은 저기로구나, 어서 가자. 내 다리를 달래며 발을 옮겼지. 그때 한 걸음씩 나아갔지. 산맥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동안 예기치 못한 즐거움은 도처에 있었고 정작 고대하던 천왕봉에 도착하여 머물며 음미한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그 후 나는 생각했다. 정상을 향한 한 걸음이 곧 정상이구나, 기쁨은 꼭 정상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발을 떼는 순간에 이미 존재하는구나. 그러니 마음이 정상에만 있으면 그 순간의 즐거움도 느낄 수 없겠구나 하고.
그때를 종종 돌아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나는 학문의 산맥을 따라 걷는 중이다. 이 순간에 집중하려 한다. 이 순간이 바로 정상이다.’ 그런데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어둠을 뚫고 새벽이 오듯, 나목에 봄꽃이 피듯 때를 어기지 않고 제 때 제 빛깔을 제대로 내는 자연. 눈앞에 펼쳐지는 천지 변화에 경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성실함에 있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고 했으나 길을 잃어버렸고 내내 제자리에 맴돌았다. 동행자는 언제나 나를 질책했다. 곁에서 함께 하는 이가 늘 나무라기만 한다면 어떻게 끝까지 갈 수 있을까.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질 수 없었다. 어떠하든 매 순간 동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 바로 자신이니 말이다. 왜 자신감이 없을까 한때 화두처럼 생각해본 적 있었는데, 나를 대하는 태도가 주요한 원인이었다. 내가 나를 못마땅해하고 믿는 마음을 내지 못했으므로.
공부에 진전이 없어 해가 저물면 하루 동안 무엇을 했나 절망한 날. 선배한테서 전화가 온 것이다. 교수가 귀국했다고.
사실 그는 지도 교수가 아니었다. 지도 교수가 된 지 얼마 후 자신의 모교로 학교를 옮겼으니. 나는 석사 논문을 쓸 때 읽은 책에 감명을 받아 저자에게 배우고 싶어 진학했지만 부득이 그 교수에게 논문 지도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가르침이 절실한 내게 그의 부재는 벽.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도종환, <담쟁이> 중에서) “결국 그 벽을 넘는” “담쟁이 잎 하나”를 닮지 못하고. 내 행동은 나의 진정한 소유나 나는 주인으로 행세하지 못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머뭇거리다가 한두 번 연하장으로 마음을 전한 적은 있었지만.
“몸을 잔뜩 웅크리게 하는 매운 추위도 서서히 물러가고 곧 봄싹이 언 땅을 뚫고 나올 2월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마음만 앞서고 행동이 미치지 못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진작 드리고 싶었던 글을 이제 쓰려 합니다. 지난날 선생님의 논문을 읽고 직접 배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간절한 바람을 어렵지 않게 실현한 행운에도 불구하고 아직 별 진척이 없으니 부끄러워 뵐 낯이 없습니다. 부끄러움이 때로는 정진의 씨앗이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하는 탓에 공부에 대한 두려움을 낳기도 하는가봅니다.
그런 저에게 한 학기와 한 학기 사이에 방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큰 위안이었습니다. 삼 일 만에 만나도 진전된 공부가 괄목할 만하다거나 겨울 석 달로 공부가 충분해졌다는 옛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학기 사이의 여가는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뿌리에 거름을 줄 수 있는 값진 계기임을 생각했습니다.
1월의 마지막에 다다른 지금, 여전히 코끼리 앞에 선 장님의 막연함 같은 게 있습니다만, 성실함에서 공부가 정밀해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저의 부족한 점이 조금이라도 보충될 수 있다면 일신우일신하기 위한 노력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매일매일 자신과의 약속이 자기 위치에 걸맞은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리며 기쁜 일 많은 한 해 보내시길 빕니다.”
새해가 되고 시간이 흘러도 교수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수는 학교를 옮겼지만 완전히 떠나지도 못하고 등 뒤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이를 뒤돌아보다가 새 제자들과 하는 스터디에 옛 제자들을 불렀다. 사제 관계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교수가 귀국한 이후 스터디가 다시 시작되었으나 계속 나가지 않자 선배는 아직 절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내게 말했다. 남 보기와 달리 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미로 속을 어서 빠져나와 낮은 봉우리라도 올라 교수를 만나러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어이 해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몰입이 필요하다고 여긴 그 무렵 전화도 거의 받지 않았다. 선배 전화조차. 다섯 달 만에 연락이 닿은 선배. 한 번 만나면 책을 몇 권이나 구경하는 듯 박학하고 시들시들한 생명에게 북돋우는 말로 자양분을 주는 선배. 그는 나에게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했다. 만약 네 동생이 너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갑자기 가슴이 막혔다.
돌이켜보면 내가 지리산 종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동행자와 함께한 덕분이었다. 용감하게 거대한 산속으로 혼자 들어갔으나 하루 등산을 해보니 가지고 간 미숫가루와 초콜릿만 먹으면서 몇 날 며칠 종주할 자신이 없었다. 노고단산장에서 하루를 묵고 아쉽지만 하산할 작정을 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뱀사골로 코스를 정하고 내려가노라니, 길가에서 쉬는 아저씨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요?”
“뱀사골로 내려가요. 종주하려고 왔는데 그냥 돌아가려구요.”
“우리도 종주할 건데, 같이 종주해요!”
그때 동행한 아저씨 세 명은 고등학교 친구 사이인데 다 같이 산을 좋아하여 붙어 다닌다고 했다. 그들의 제안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결정하지 못한 채로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러다 어느새 점심까지 얻어먹고 있는 게 아닌가. 낯을 몹시도 가리는 내가. 내 또래의 자기 자녀는 산에 같이 가자고 해도 따라나서지 않는다고 하면서 혼자 산에 온 나를 그들은 가상하게 여겼다.
군식구가 일행에 끼는 바람에 세석산장에서 양식이 떨어져 누가 두고 간 쌀 봉지를 주워오고 비상식량인 라면도 몇 번 끓여 먹었다. 내가 도움을 받기만 하는 데도 불구하고 아저씨들은 나를 두고 약방에 감초라고 했다. 사진도 찍어주고 밀어주고 끌어주며 산장에 도착해서는 피로 푸는 법까지 알려주는 아저씨들한테서 아빠의 품을 느꼈다.
하루에 11시간도 넘게 걸어 발에 물집까지 생겼지만 3박 4일에 걸쳐 종주를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나는 희열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기가 충천하여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한 아저씨들의 인도와 배려 덕분에.
산에서 만난 아저씨들처럼 학문의 산에서 만난 교수는 나의 동행자. 그런데 나는 교수 앞에 나설 용기가 없어 교수가 따라오라고 뒤돌아보아도 눈길을 피하고 혼자 걷고 있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큰 존재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불만족스러운 자신의 모습이나 결과물에서도 만족스러운 것을 찾아준 기억을 상기해보았다. 나의 눈보다 깊고 섬세하여 변화 없는 속의 변화, 정지에서 진보를 읽을 줄 아는 눈을 떠올려보았다.
나를 인정해준 이들의 말이 스스로 비하하는 내 가슴속에서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빛의 감정에 둘러싸인 순간 생각보다 내가 훨씬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 기분 속에 잠기고 싶어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한 이들의 말을 혼자 듣고 또 듣고는 했다. 가령 넌 능력이 많다고, 너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 선배의 말이나 어떻게 그렇게 늘었느냐고, 무섭다고 한 교수의 말을. 그리고 꿈에 나타난 한 스님이 내게 해준 말을. 너는 특별하다는 그 말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