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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롭 Jul 02. 2023

스승이면서 친구처럼 털어놓을 수 없으면

그의 부재는 벽 2

석사 논문 지도 교수를 이미 정한 뒤였다. 노교수의 수업을 들었을 때는. 그 후 관심이 없던 분야에 갑자기 흥미가 생겨나 논문 주제를 바꾸고 정년퇴임한 그에게 지도 받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 지도 교수를 만나 용기 내어 세부 전공을 바꾸려 한다는 말을 했다. 주제를 바꾸니 다른 교수에게 지도를 받아야겠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고 괜찮으시냐는 둥 우물쭈물 말했다.


지도해 줄 수 있는 교수를 다시 찾아보라는 대답을 들을 줄 알았다면 엉뚱한 기대였을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교수가 말했다. 되묻는 말에 하고 싶은 말이 그만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를 끝내 발설하지 못하고 논문 주제만 바꾼 채 노교수를 따라다녔다. 그가 어느 학교에서 수업을 하든지.


석사 논문을 쓰고 다른 학교로 진학한 후 혼자 미로 속을 헤매고 있을 때 그동안 의지한 노교수 생각이 나곤 했다. 그러나 지지부진했으므로 연락을 잘 하지는 못했다. 뭔가 보일 만한 게 있어야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스승에게 갈 때 꼭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데. 질문거리만 있으면 되는데. 스승은 학문의 산맥을 넘는 동행자이며 길잡이지 도착지에서 승인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스승의 날. 노교수를 만나러 가지는 못하고 선물을 보냈다. 그런데 선물이 되돌아왔다. 연락 없이 지내는 사이 노교수가 이사를 한 것이다. 나는 고여 있어도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마침내 봄. 주소를 물으려고 전화를 하니 교수는 내가 누군지 금방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교수가 멈칫하는 사이 당혹스러웠다. 나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 듯이.


그간 고인 물처럼 있은 일을 말하니 그럴 때는 찾아와야지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무슨 물음에 내가 동문서답을 했는지 노교수가 말했다. “전화로는 안 되겠다. 너, 답답하지? 언제든 와. 나는 쉬는 사람이고 너는 공부하는 사람이니 네가 온다고 하면 언제라도 시간을 비워둘게”


나를 위한 시간을 기꺼이 내 주고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이에게 나는 발표를 앞두고 있으니 끝마치고 가겠다고 했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보이고 발표하는 게 낫지 않겠니? 나를 활용해.” 오랜만에 듣는 노교수의 말들. 들을수록 가슴이 울렁거렸다. 도와줄 마음이 있는 이를 저만치 밀쳐두고 혼자 몸부림치고 있었으니 자기를 활용하라고까지 말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혼자 있으면 안 된다고, 2주에 한 번씩 교수들을 찾아가라고, 꾸중을 듣든 칭찬을 듣든 자극을 받고 남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어느 정도 했는지 보라고 노교수는 말했다. ‘맞아요. 혼자 들어앉아 있었지만 제자리만 맴돌고 있어요.’ 속으로 맞장구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배우고 싶어 찾아가 그에게 논문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되자 곧 학교를 옮겨간 전 지도 교수를. 마음이 달려가는데 발걸음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아 좀처럼 다가가지 못한 그를.


어느 날 이지의 문장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스승이면서 친구처럼 털어놓을 수 없으면 스승이 아니고 친구이면서 스승처럼 배울 수 없으면 친구가 아니다.” 스승과 친구를 별개의 존재로 여긴 나는 그 문장을 되뇌다가 그래서 스승과 벗을 아울러 師友라고 말하는가 생각하다가 옛 사람의 문장에 나를 비춰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떤 스승도 스승으로 대하고 있지 않았다. 어디 그 뿐인가. 어떤 친구에게도 친구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이제 왔어요.” 뒤늦게 전 지도 교수 연구실로 들어서면서 겸연쩍은 내가 꺼낸 인사. 교수가 귀국한 지 여섯 달 만에. 논문을 가지고 만나러 가겠다는 메일을 보내고도 넉 달이나 지나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 교수가 백안시하지나 않을까 불안했다.


많은 책이 꽂힌 책장 너머를 향해 짐짓 상기된 목소리를 냈다. 책장에 가려 교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좁은 연구실에 책이 넘쳐나 책의 장막 속에 있는 교수는 문으로 누가 들어오는지 볼 수 없었다. 연구실 구석에 세워둔 전신 거울로 교수 얼굴이 잠깐 보이더니 책의 장막 뒤쪽에서 그가 나오는데, 안색을 보는 순간 걱정이 녹아내렸다.


내 생각이 얼마나 옹졸한지. 자기 수준으로 상대방의 반응을 예감한다면 그것은 그에 대한 모독이다. 나처럼 속이 좁은 사람은 드물기 때문인데. 걱정이란 그러니까 자기 내면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내가 오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교수는 내 심경에 변화가 생긴 줄 알았다고 했다. 그가 미국에서 논문에 도움이 될 자료를 보내주었을 때 내가 수행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공부를 그만두고 그 길로 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교수는 그런 말은 차치하고 공부 이야기를 꺼냈다. 논문은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들고 간 목차를 말없이 먼저 보여주었다. 논문을 들고 가려고 만남의 시기를 질질 끌었던 것인데 끝내 목차만 들고 간 것이다. 내민 목차를 교수가 들여다보고 있을 때 보일 게 그뿐이어서 참으로 민망했다. 핑계거리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논문은 진척되지 않고 우울해서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는 말이 튀어나와 나도 깜짝 놀랐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이런 일기를 썼으니까. “저녁이 될 때까지 인터넷 서핑을 하며 불교 관련 글을 읽던 내 고질병을 이제 고쳤다. 그간 공부가 안되었던 것은 정신이 공부 아닌 다른 데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는 내 말을 통해 나를 이해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울해서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는 말에 그럴 때는 병원에 가야된다고 했다.


공부하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에 정신신경과에 가서 검진을 한 번씩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대학원에서 한 학생이 자살을 한 후 어떤 교수는 지도 제자들을 데리고 단체로 정신신경과에 가는 이야기며 자기 지도 제자 두 명이 공부를 그만두고 연구실을 나간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일이 발생했으니 시간이 흘러도 내가 나타나지 않자 드디어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궁금하고 걱정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른 교수를 만나면 내 소식을 묻고는 했을 것이다. 교수가 직접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른 교수를 통해서였다. 교수는 다시 공부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도움이 될 논문을 여러 편 주었다. 아직 발간되지 않은 논문은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교수를 만난 지는 몇 해되었지만 둘이서 이야기를 한참 나눈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늘 두려워하기만 한 그의 얼굴은 내내 웃음을 머금고 눈에서는 햇살 같은 빛이 흘러나왔다. 따사로운 봄볕이 비치면 나목이 기적처럼 순식간 꽃을 피우듯이 내 가슴 여기저기서 꽃봉오리가 마구 터지고 있었다. ‘포용은 포옹의 다른 말이 아닐까. 두 팔이 아니라 얼굴로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껴안기. 포용이야말로 상대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교수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교수의 말을 들으며 메모한 것들을 보려고 지하철에서 펼쳤으나 그런 것들이 눈에 들오지 않았다. 행복해서 그 기분을 내내 음미하고만 싶었다. 아무것도 들고 가지 않은 내게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영혼의 용기로 믿음이라는 감로수를 건넸으니 그 한 모금의 물이 계속 걸어갈 힘을 샘솟게 한 것이다.      

         


언제 한번 새 지도교수를 찾아갔을 때 “네 전화 착신 금지되어 있더라?” 하고 물었다. 한동안 핸드폰을 일시 정지 해둔 때였다. 나는 무슨 일로 전화했는지 묻지도 않은 채 다만 “제 전화 발신도 금지되어 있는데요” 하고 말했다. 교수의 물음에 내가 답한 말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내 말에 할 말을 은 교수 얼굴도 떠오르고.


그 교수한테서 메일이 와 있었다. “요새 어케 지내냐? 니 소식이 많이 궁금타.” 이렇게 말문을 여는 메일. 세미나에서 전 지도 교수를 만났는데 내 소식을 묻더라는 문장이 이어졌다. 그렇게 새 지도교수가 보낸 메일을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니가 좀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워서, 섣불리 글을 쓰지 않는 것도 쌤이 잘 알고 있지.” 왜 진도가 이렇게 느리느냐고 질책하지 않고 헤아리려고 하는 그의 아량에. 내 편에서 이해하는 포용력에. 내가 일편단심 전 지도 교수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는 별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내가 니 지도 교수가 맞느냐고 한 번 묻기는 했지만.


똑같은 말을 전 지도 교수도 내게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지도 교수일 때. 있는 듯 없는 듯 멀찍이 뚝 떨어져 거리를 두고 있으므로 스승들이 내게서 느끼는 서운함은 누구든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내심 절실하게 필요로 하면서도 표현하지 않으므로 자신이 스승이 맞는지 헷갈리게 하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을 내가 잡든 잡지 않든 손을 거두지 않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려준 사람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 하늘 냄새를 맡는다”(박희준, <하늘 냄새>) 시구절을 읽고 그들을 생각하다가 스승이면서 친구처럼 털어놓을 수 없으면 스승이 아니라는 이지의 말을 중얼거리다가 깨달았다. 내가 가는 길에 가장 큰 장애는 언제나 나였다는 것을. 벽과 같았던 상황도 사실 벽이 아니고 그 자체로 온전했다는 것을. 모든 것이 뜻하는 대로 흘러 순조로울 때조차 나는 벽을 만들고 그 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시경』에 “높은 산을 우러러보면서 대도를 행한다”는 옛 사람의 노래가 있는데, 내가 우러러보는 높은 산은 하늘 냄새가 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 안에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얼마나 많은 나를 넘어서야 하늘 냄새 나는 나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를 넘어서면 또 다른 내가 벽처럼 나를 막을지 모르지만. 하늘 냄새를 맡으며 낙엽을 거름삼아 연초록 잎을 내미는 나무같이 지난날을 거름으로 발돋움하기를.



*제목은 탁오 이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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