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우리 사회.
"안녕하세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쪼꼬미 같은 아이가 나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자, 부모는 엉겁결에 나직이 말한다.
"아니야…"
본인이 흘리듯 내뱉어 놓고 당황스러워하는 그 "아니야"에는
의외로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이웃이 아니야.’
‘복장과 음식 봉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봐선 이 사람은 배달하는 사람이야.’
‘배달원에게 인사할 필요는 없어.’
“안녕~”
어쨌거나 나는 사람 좋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본다.
매장에서 픽업할 때도 이런 경험이 제법 있다.
배달을 막 시작했을 무렵,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픽업하러 가곤 했다.
그럴 땐 매장에서 종종 나를 손님으로 착각하곤 했다.
“어서 오세요!”
반갑게 맞아주는 인사에, 나도 반갑게 화답한다.
“안녕하세요. 쿠팡이츠 XXX 가지러 왔어요.”
그러면 상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뀐다.
방금 자신이 내뱉은 “어서 오세요”가 아까운 듯, 목소리 톤까지 달라진다.
“아… 배달이세요. 배달은 뒷문으로 들어가면 있어요.”
놀러 나가듯 신경 써서 옷을 입고 가면 이런 실망스러운 상황은 더 자주 벌어진다.
처음엔 그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오해도, 실망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누가 봐도 ‘배달하는 사람이구나’ 싶을 만한 옷을 구입해 입고 다닌다.
사실 그것도 부족해 자동차임에도 마음 같아선 픽플러스인지 그 양반처럼 하이바를 하나 구해 쓰고 다니고 싶다.
그래서 며칠간 꿋꿋하게 실험해 봤다.
픽업하러 들어가서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를 의도적으로 빠짐없이 건넸다.
과연, 나의 인사는 얼마나 돌아왔을까?
놀랍게도, 30%도 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가만히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 역시 처음 시작했을 땐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톤도 낮아지고,
받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아예 인사조차 하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 보면, 매장에 있는 사람들도 처음엔 라이더든 누구든 인사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번 무시당하고 나서, 점점 입을 닫게 된 건 아닐까?
라이더 역시 마찬가지다.
인사를 하던 이들이 씹히고, 무시당하면서 점점 말수가 줄고,
결국엔 인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이렇게 ‘인사하던 사람들’ 그룹에 '인사하지 않는 사람들' 몇 명만 속해 있으면 마치 감염되듯
‘인사하지 않는 사람들’로 바뀌어 간다.
그렇게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사하지 않는 사람들' 그룹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최대한 상냥하게 받아준다.
분명 내가 아님 누군가 그 인사를 씹어버린다면, 아이는 뻘쭘하거나 그 어떤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뻘쭘함이 반복되면 결국, 입을 다물게 되어 ‘인사하지 않는 그룹’에 속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아이는 자라며 언젠가 됐든 무조건적으로 ‘인사 안 하는 사람’이 된다.
우리들처럼.
연재를 시작할 때, 서너 개만 대충 구상해 두고 매주 한 편씩 써봐야지 마음먹었다.
‘뭐, 쓰다 보면 쓸 거 있겠지’ 싶었는데… 이게 만만치 않다.
누가 읽든 말든, 일단 10회까지는 꼭 써보자 다짐했지만
당장 다음 주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