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글.
본의 아니게 관찰을 하게 됐다.
그는 길모퉁이를 서성이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검은 모자를 흔들어 보이며 구걸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본 터라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공격적이거나 위협적인 모습은 없어 보였다.
대략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아래위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키는 180 정도, 체중은 100킬로는 족히 넘어 보인다.
거기에 백정처럼 시커먼 수염이 철사처럼 삐죽삐죽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그런 그가 편의점 앞을 모퉁이를 서성이며, 고개를 까딱 까딱 숙여가며 모자를 대충 흔들며 구걸을 한다.
길 모퉁이는 그의 존재자체로 불편해 보인다.
‘요즘도 거지가 있어?’
하려고 들면 뭐든 할 일이 넘쳐나는 시절이라 생각하기에 그저 냉소적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십분 정도 픽업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나는 그를 유심히 지켜보게 됐다.
그러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밤의 번화한 그곳.
수많은 행인들이 있었지만 그는 다행스럽게도 여성에게는 구걸하지 않았다.
'그만의 무슨 원칙이 있는 걸까? 여자에겐 창피한가?'
사실 그가 다가서 모자를 흔들며 구걸한다면 여성의 입장에선 상당히 무서울 것이다.
그러다 나와 비슷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그에게 다가가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 중년남성은 좀 전에 그의 구걸을 손사래 치며 지나쳤던 사람이었다.
불과 몇 분 만에 돌아와 그에게 만원을 쥐어준 거다.
마침 나는 기다리던 시간이 다되어 난 음식을 픽업하고 나와 차에 탔다.
그 사이 그는 편의점에서 무언가를 잔뜩 산 듯 흰 비닐봉지를 편의점 앞 테이블에 올려두고 크림빵하나를 꺼내 뜯는다.
무슨 생각에선지 바로 출발하지 않고 그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그래도 해야 할 임무가 있기에 이내 자리를 떠났지만 왠지 운전하는 동안 입가에 하얀 크림을 잔뜩 묻히고 빵을 먹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를 처음 봤을 땐 그저 불편한 시선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시구가 이런 의미인가.
짧은 시간이지만 그를 자세히 바라보다 보니 연민이 생겼나 보다.
'얼마라도 주고 올걸...'
한동안 크림빵을 먹던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안타깝게 맴돌았다.
국민학교 때부터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어릴 땐 아버지들이 쓰레기였는데 요즘은 엄마들이 쓰레기다."
그 시절 폭력적이거나 술. 여자등 가정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거의 아버지들이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 무렵 나와 친구가 바라본 어른들의 모습은 그러했기에 나는 친구의 말뜻을 잘 안다.
그런데 요즘은 엄마들이 쓰레기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그 시절 가정을 망치는 건 대체적으로 남자였지만, 현재의 아이들을 망치는 건 대체적으로 여자라는 소리를 극단적으로 한 것일께다.
정말 억척스럽게 살며 자수성가한 그 친구는 아이가 둘이 있다.
친구는 나름 오십 평이 넘는 중심지 아파트에 융자하나 없이 살며 현금성 자산도 제법 있다.
물려받는 건 커녕 적잖은 부모의 빚까지 갚아가며 순수하게 자신의 두 손으로 이룬것들이다.
그런 친구의 아들은 고등학생임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달에 일이백은 벌면서 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친구 역시 남들 이상으로 벌고 있지만 일이 없는 시간이면 쿠팡이츠를 할 정도다.
공부머리는 그러하니 자신의 아들에게 성실함과 인내, 절제, 경제를 가리키는데 모범을 보이려 애를 쓴다.
그런데 아내와는 결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아내는 물론, 자신의 어머니 역시 아이에게 해를 입 한다고 한다.
무슨 말이냐면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오거나 학교 마치고 집에 올 때면 한번씩 던지듯 공감하는 말로 위로하는 게 못마땅하단다.
"힘들었지"
"너무 힘들면 하지 마"
"그건 너무 위험한 거 아니니"
"그건 좀... 돈이 좀 적어도 다른 걸 해보는 건 어때?"
"안 해도 괜찮아."
등등의 공감형 말들이다.
이런 말들은 사람을 주저앉힐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힘들게 일하던 이십 대 시절 하루 종일 일하고 너무너무 힘들어 길에 잠시 주저앉았는데 누군가 계속 위로한답시고 ' 너무 힘들지? 힘들면 다른 걸 알아봐' 라고 펌프질 했다면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고 결국 무너졌을 것이라고 한다.
누구나 힘이 들고 고될 수 있지만 그걸 옆에서 "힘들지?"라고 해서 달라질 건 하나 없다.
아니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쌓이면 사람의 마음이 점점 나약해지고 결국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아... 그래 이건 나한테 너무 벅차.. 다른 거 알아봐야겠다.'
'어. 맞아 이건 너무 위험한 거 같아. 못하겠어.'
'맞아. 이건 그만둬도 모두가 인정해 줄 거야'
주변의 말이 씨앗이 되어 마음속에서부터 변명이 생기고 핑계가 생겨난다.
이렇게 타협하고 주저앉다 보면 결국 물러터지고 나약한 사람으로 굳어진다.
그렇게 자라서 좋은 기회를 갖고 잘살면 그만일 텐데, 그 좋은 직장, 입맛에 맞는 일만 찾다가 그저 주저앉아버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걸 누가 책임져 준단 말인가?
아무튼 친구는 자신의 아내나 어머니가 하는 그런 말들로부터 자신의 아들을 지키는데 온 힘을 다한다고 한다.
"야 우리 엄마나 와이프는 애들한테 악마가 따로 없다 악마가.."
요즘 세태를 보면 그들의 위로 섞인 말들이 악마가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돕는 속삭임이라는 친구에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가능하다면 젊은 시절의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너에게도..
' 마음속에 변명거리를 만들어주지 마.
그렇지 않아도 인간은 끊임없이 나약한 마음이 고개를 들어 타협하려 들고, 포기할 핑계를 찾아.
그걸 이겨 낸 자들이 역사를 쓰고, 미래를 그려 나아가고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