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날씨가... 기냥 미쳐버린 거지.
응! 너무 좋잖아?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살랑이고,
간만에 체육센터 수영장에서 운동한답시고, 허우적거리며 물 튀겨가며 잘 놀다 나온 날.
크~ 몸은 개운하고 기분은 상쾌하고, 이대로 집에 가면 완벽한 하루였지.
그런데 말이지, 그냥 집에 가는 건 뭔가 아쉽지 않냐고.
나는 슬쩍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어.
방향이 맞으면 하고 아님 말고~
띠——링! 띠링띠링!
어라? 이게 웬일?
켜자마자 바로 콜이 떠주는 거지. 그것도 내가 가는 방향으로.
이건 안 하면 전지구적 에너지 낭비 아닌가.
심지어 픽업 장소도 지금 내가 서 있는 수영장 근처!
이건 진짜 안 잡으면 배신이지. 곧장 수락!
임무는 간단했거등.
중국집에서 1인 자장세트를 픽업해서 집 근처 XX아파트로 배달.
날씨 좋지, 코스 좋지, 금방 운동하고 나와 상쾌하지~
뭔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기분으로 시작한 거지.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하고, 평소처럼 고객 요청사항을 확인하려던 찰나.
뭐가... 길다.
뭔 요구사항이..... 이리 길지?
보통은 “공동현관 비번은 1010입니다”,
혹은 “벨 누르지 마세요. 애기 자요” 정도의 소박한 한 줄인데,
이건 무슨... 작문 숙제인가?
그리고 그 곱지 않은 글 속에 그 문장.
마지막 그 한 줄이 눈에 박히더라.
“빠르게 배달해 주세요. 식어 있으면 음식 안 받고 돌려보냅니다.”
... 예?
이게... 진짜야?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
아니, 맞다. 진짜 그렇게 써 있네.
식어 있으면… 돌려보낸다니...
그래, 그 짧은 문장에서 그가 음식을 대하는 섬세함. 음식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어.
'합격!'
그는 반드시 ‘따뜻한 짜장면’을 먹어야만 하는 사람인거지.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손에 든 용기 바닥을 만져봤어.
'늦지 않았어.. 아직 따뜻해!'
곧장 산들거리는 바람을 뒤로하고 힘찬 발걸음으로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지.
그런데...
'두둥~'
엘리베이터 공사 중.
그래 아마, 그 무렵 노후된 엘리베이터 교체를 많이 했거든.
내 눈앞에 커다랗게 붙은 ‘엘리베이터 교체로 인해 사용불가’
"Wow~surprise!"
진짜 웃음도 안 나오는 그 와우.
갑자기 짜장면을 든 손이 묵직해지더라구.
몸은 수영 후라 가볍고 상쾌했지만, 그의 모진 마음이 엿보이던 요구사항과 사용불가 엘리베이터를 보니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진지해진게지.
내가 가야 할 곳은 무려 140X호..
물건을 들고 왔으니 돌이킬 수 없게 된 거야.
이것은 이미 수락된 임무.
엘리베이터 못 쓸 때 짜장시킨 인간아!
니뜻대로 짜장면은, 반드시 따뜻하게 도착할 것이야. 걱정말라규~
배달을 하다 보면, 사실상 주문자와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주류를 주문한 경우를 제외하곤, 음식은 대부분 문 앞에 두고 사진 한 장 찍으면 끝이다.
서로 얼굴을 볼 일도, 말을 섞을 일도 없으니 갈등이 생길 여지도 적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배달원'의 입장이다.
그 모든 과정의 이면에는 매장, 그리고 플랫폼이 떠안는 수많은 클레임들이 존재할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는 오로지 자기 입장만을 주장하며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엘리베이터 교체 중.’
곱지 않은 장문의 문장과 거기에 덧붙인 “식으면 돌려보냅니다.”라는 주문 요청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배달기 중 가장 최악의 워스트 주문자다. (서두에 말했다시피 '배달원'은 주문자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기에 좋고 나쁘고 가 특별히 생길 일이 없다.)
그것 말고도 나의 입장에선 그저 쉬운 임무였지만,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음식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배달된 음식을 '수거'하는 임무였다.
어떤 사람이 피자를 시켜 두 조각을 먹고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문 앞에 내놓았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쿠팡 측에선 아마 이렇게 대응했을 것이다.
“환불을 해드릴 테니, 피자는 고객님께서 알아서 처분해 주세요.”
하지만 그 주문자는, “내가 왜 치워야 하냐. 와서 가져가세요.”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결국, 나에게 8000원이나 줘가며 그 피자를 치우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누군가 만들었을 테고, 누군가 배달했을 테고, 나는 그걸 가져다 버린다.
그저 들고 내려와 차에 싣고 다니다 집에 와서 분리해 음식물수거함에 넣고 박스는 따로 버렸다.
사실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유추해 보면 내 정서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나였다면 그 피자에 엄청난 문제가 있었다고 한들. 환불을 받았다면 조금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내가 알아서 처분했을 것 같다.
아무튼 요지는 블랙컨슈머가 증가할수록 서비스비용 또한 증가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소비자들의 몫이다.
워스트가 있다면 베스트도 있다.
며칠 전 새벽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치킨을 시켰는데 사진을 보니 다른데 두신 거 같아요."
그의 말투에는 그 어떤 짜증도 화도 없었다. 되려 나에게 미안해하는 어투였다.
그날 4개를 배달했고 그중 치킨배달은 하나뿐이 없었기 때문에 듣자마자 어딘지 바로 알 것 같았다.
게다가 불과, 30분 전 했던 일이라 선명했다.
"XX모텔 303호 맞나요?"
그는 맞다고 했고 나는 최대한 빨리 다시 가보겠다고 했다.
벗던 옷을 다시 입고, 시동을 켜고 다시 그 모텔로 갔다.
가는 동안 잘 갔다 놨는데.. 나의 실수 일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이동했다.
아뿔싸!!
그런데 웬걸..
모텔 여러 개가 모여있는 곳이라 실수로 입구가 가깝게 붙은 다른 모텔로 올라가 303호 입구에 치킨을 놓고 온 것이다.
당황스러운 마음과 낯선 모텔 복도에 식어가던 치킨을 잽싸게 집어 들고 달렸다.
빠르게 달리면 나의 실수가 덮어질 수 있다는 듯이 뛰어서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치킨을 두고 다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문 앞에 갖다 놨습니다.”
마음 같아선 더 많은 사과를 하고 싶었고,
식은 치킨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기꺼이 감수할 각오도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생각지도 못한 답장이 도착했다.
“네, 감사합니다.”
“잘 받았습니다.”
-실제 문자 캡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실수를 했고 그 실수를 이해받았다.
소액의 상품권이라도 보낼까 잠시 고민하다
그것 역시 괜한 오지랖일까 싶어 관뒀다.
무언가 하나 걸리기만 하면 끝까지 꼬투리를 잡고, 어떻게든 물어뜯어 보상을 받아내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필요 이상으로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손해 보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얼추 10화까지 연재해 보자 마음먹었던 '배달 왔습니다'
그 목표에 도달했다.
원래 영화시나리오 쓴답시고 적잖은 세월을 허비했다.
물론 아직도 허비 중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경험이나 이야기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아 또 다른 스토리로 만들어내고 싶은 내재된 욕망이 있다.
그 욕망에 따라 나의 배달경험들이 머릿속에서 뿌옇게 스토리화된 것이 있다.
전혀 구체화되지 않고 안개처럼 뿌옇게 구상된 내용을 대충 정리해 보고 가능하다면
에세이나 칼럼형식의 글이 아닌 나의 상상 속 이야기를 연재해볼까 한다.
뭐... 안 할 수도 있고.
..
우선, 단편이나 가끔 써봐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