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전념치료(ACT)
#뭐가 이렇게 불안하냐
오늘 직장에서 한 선생님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고민은 이러했다. 바우처라는 국가에서 아동의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내년부터는 더욱 엄격해져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격으로는 꾸준히 일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내년 8월까지 일을 하거나, 이후에도 일을 하려면 자격 조건을 갖추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것. 사실상 미술, 놀이, 언어, 인지치료사들에게 바우처 자격은 중요한 문제이다. 취업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선생님은 이미 대학원 석사 막 학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논문과 상담심리사 자격시험 준비 등으로 신경 쓸 일이 많은 상태였다. 나는 애써서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년 8월이면 쌤이 석사 졸업한 후고, 상담심리사 시험도 본 후니까 새로운 자격증이 생겨서 성인상담 쪽으로도 취업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갸우뚱하는 선생님에게 위로를 주고자 나는 또 덧붙였다. "그리고 내년 8월 문제를 왜 앞당겨서 고민해요" 이 말을 듣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쌤, 나도 아는데 너무 불안해요"
선생님과 나는 전에도 이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너무나도 공감했던 부분은 막상 리스트 업을 해보면 내가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나오지 않은데도 앞에 닥쳐올 미래들로 불안한 것이다. 우리는 서로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했고, 이러한 각자의 불안에 대해서 종종 나누곤 했다. 그리고 오늘 선생님의 고민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서 뭐가 이렇게 불안한 걸까 생각했다. 나도 재택을 하는 남편 옆에 붙어서 지금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 시간의 짜임새
코로나 19 사태로 올해까지 재택을 하게 된 남편은 날 보며 부럽다 말했다. 그러면서 너와 내가 쓰는 시간의 짜임새가 다르다고 설명해주었다. 본인은 집에 있지만 저녁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일만 해야 하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내 시간이 부러운 것이고 나는 막상 주어진 시간이 짜여져 있지 않으니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짜임새 있게 나눠보라고 제안했다.
나는 8월부터 건강을 되찾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는데, 근무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5시나 6시쯤에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끝내고 저녁을 준비하고 나서 샤워를 마치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니 직장에서 오전 교육을 마치고 집에 두 세시쯤 들어오면 "저녁까지 뭐하지" 했던 시간이, "저녁 운동 전까지 한두 시간 남았네"가 되었다. 정말 우습게도 그 짜임새 하나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라고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한두 시간을 일주일의 시간을 미뤄보며 다시 짜게 되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날이면, 보고 싶은 영화를 본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기로 했다. 다음날도 쉬는 날이거나 오후 출근이면, 블로그를 해보거나 요즘 공부 중인 분야의 책을 읽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있는 요즘, 남편이 말하던 시간의 짜임새가 너무나도 중요했다는 걸 느꼈다. 직장인들은 자신이 쓰고 싶은 만큼 쓰지 못하기에 시간이 주어지면 하고 싶은 대로 쓰지만, 나와 같은 프리랜서 혹은 주부는 방대한 시간이 주어지기에 우리가 짜임 있게 만들어보는 게 필요하다.
# 고집스러운 나 다스리기
오늘 하루를 지내고 나면 때때로 인생을 점검하게 된다. 지금으로써 잘하고 있는 거 맞나. 직장을 다닐 때에는 이런 생각조차 할 틈이 없이 계절이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나니 내가 이번 연도에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내가 바라던 30대의 나와 비춰본다. 뭔가 30대에는 건강한 가정에서 내가 바라던 직업에 든든한 직책 하나 정도는 맡을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또 고집스럽게 미래를 보게 된다. 미래를 보지 않고 인생을 설계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해도 내가 바라던 미래와 다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 현재의 내 시간을 때마다 체크하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생각을 피곤하게 만듬에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이 고집스러운 나를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까.
최근 심리 학문에서는 마음 챙김과 더불어 수용 전념 치료(ACT)가 뜨고 있다. 수용 전념 치료에서는 6가지의 핵심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었다. 설명하자면 '개념의 나'와 '맥락의 나'를 구분하는 것이다. '개념의 나'는 내가 명명 짓는 나로서 소망하거나 당위적으로 사고하게 한다. 내가 개념 하는 나는 안전한 30대를 보내는 것이고, 안전하게 보낸다라는 것은 경제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장에 소속되고 싶고, 상담사로서 전문성을 갖추고 싶은 속마음을 뜻한다. 그리고 '맥락의 나'는 맥락에 놓여 있는 나로서 내가 처한 지금-여기에 집중하게 한다. 나로 예를 든다면 '요 며칠 새 시간을 짜임새 있게 사용하고 있는 나'가 되겠다.
그렇다면 왜 개념의 나와 맥락의 나를 구분해야 할까. 수용 전념 치료(ACT)에 의하면 우리는 맥락의 나를 개념의 나로서 정의하려 들기 때문에 온전히 스스로를 수용하지 못하고 심리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개념의 나로 스스로를 본다면 어두컴컴한 바다를 건너는 배 위에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 반면 맥락의 나는 다리 위에서 그 바다를 건너는 배를 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환경에 놓여 있는 나를 환경 속에서 이해를 해야만이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고집스러운 나는 ACT에 의하면 개념의 나였을 것이다. 안전한 30대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배 안에서 "잘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만 되뇌고 있었다. 나는 맥락의 나로서 스스로를 이해해보려노력 중이다. 어두컴컴한 바다여서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짐작만 할 뿐이겠지만 이 배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이해하고 격려하고 싶다. 하지만 고집스럽게도 다시 "얼마나 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할지 모른다. 그렇게 질문이 떠오를 때라도 그런 걱정을 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내 시선을 다리 위에서 배로 옮길 것이다.
그렇게 고집스러운 나를 다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