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후 3시 09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백의 인지치료

by 오후세시


# 생긴 게 다는 아니잖아


견과류가 유통기한이 다돼간다. 얼른 먹어야지 싶어서 눈에 띄게 좋도록 꺼내놓은 채로 유통기한이 지났다(웃프다...). 견과류는 흔히 좋은 지방으로 불리며 두뇌회전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에 호두는 두뇌의 모양과 닮은 견과류이면서 두뇌 회전에 좋다고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의 신체 기관과 닮은 모양새를 한 고것이 어떻게 그 기관에 효능까지 전달하느냐 말이다. 우연한 호기심에 검색해보니 자궁을 닮은 아보카도는 자궁에 좋고, 단면을 자르면 눈동자 모양이 있다는 당근은 눈에 좋았고, 콩팥과 색까지 비슷한 강낭콩 또한 콩팥에 좋다고 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으신 건가. "오 그러면 만들기 너무 쉬우셨겠다" 싶은 순수함에서 갑자기 지킬 앤 하이드처럼 "아니 그래도, 생긴 게 다는 아니잖아" 하고 입이 뾰족됐다.


얼마 전 아는 형님의 이준기와 아이유 편을 다시 봤었다(악의 꽃을 보고 나서 이준기에게 빠졌던 게 정확한 이유...). 거기서 아이유는 '스스로를 좋아하냐'는 강호동의 철학적 질문에, 전에는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새 들어 자신이 만족스럽다고 대답했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 나 역시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때가 많았다. 나는 적당한 살집 덕인지, 작은 눈이 웃을 때 활짝 찢어져서인지 첫인상이 늘 좋은 편이었다. 처음 사회생활할 때 첫 면접에서 같이 일해줄 수 있는지 답을 듣길 원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하셨다(이제 보면 뭐든지 잘 따를 것 같이 보였을 수도..). 아니 학습 심리학에서도 실험에서 첫인상이 '후광효과'로 발휘하기도 하는데,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좋게 먹고 들어간 첫인상과 다르게, 실제로 빠르지 못하고 실수가 잦은 내 모습은 점 점 마이너스가 되어갔다. 지금은 친한 언니들로 남은 동료들은 "그때는 물건이 들어왔다 싶었는데.."라고 말을 흐려 뼈를 맞았더랬다.

뼈 맞았...



나도 뇌에 좋은 호두처럼, 보이는 게 진짜였으면 좋았을 텐데... 또르르




# 확언의 말


나는 최근에 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면접을 보았다. 공공기관이데가 첫 취업이라 기대가 컸지만, 코로나로 2020년 전체가 취업 위기 상태인 현실에서 합격을 기대하진 말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리고 아직 두 달째 지속하고 있는 일기에 확언의 말을 적으며 되내었다. 확언의 말은 미라클 모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자신에 대한 확언의 말을 반복함으로써 자기 효능감을 높이도록 격려하는 방법이었다. 미라클 모닝에서 새벽을 꺠우는 루틴을 따라 하면서(다음장에 자세히) 내 삶에 변화가 많이 있었는데, 그중 효과를 본 것이 확언의 말이었다.


KakaoTalk_20201020_140319871_01.jpg 내 마음대로 만들어본 아침 루틴


확언의 말을 적으면서 나 스스로 신기했던 체험은 면접을 보는 와중에 일기에서 되뇌었던 확언이 실제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떨리면서도 면접에서 하고 싶은 말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을 다 하고 나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면접에도 붙었다.

KakaoTalk_20201020_140319871.jpg

내가 자주 적었던 확언의 말은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다"였다.


이 확언의 말은 백의 인지치료에서 설명하는 인지적 사고와 비슷하다. (상담이론이기에 주로 부정적이고 역기능적인 신념이지만) 개인은 저마다 핵심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핵심 신념은 아주 밑에 있는 뿌리와도 같고, 이 뿌리에서 파생된 중간 신념이 우리의 생활에 자동적인 사고를 만들어낸다. 가령, 내가 부모와의 애착형성에 어려움을 겪어 사랑을 못 누리고 자랐다면 내 뿌리 기저에는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라는 핵심 신념이 자리 잡을 것이다. 그 핵심 신념을 타고 올라간 중간 신념은 좀 더 실생활에 가까워진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기에 '어딜 가든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혹은 '나는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등으로 자리 잡는다. 이 중간 신념은 자동적인 사고로 더 실생활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만나면 순식간에 자동문이 열리듯 사고하게 된다. '저 사람도 나를 싫어하겠지' 혹은 '나는 여기서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야' 등과 같이 쉴 새 없이 내면에 속삭인다. 이것이 백이 말하는 인지치료의 핵심이고, 상담자는 핵심 신념을 교정하도록 인지적 접근을 취한다.



#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확언의 말에 효과를 경험하면서 나는 백을 다시 보았다. 자고로 상담자는 마음으로 일하는 직업 아니냐며 뭘 몰랐던 코 찔찔이 시절에는 인지치료를 그저 책의 한 이론으로 보았다. 그런데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것이었지..(이래서 뭐든지 해봐야 한다...). 자기에 관한 확신과 그에 바탕이 되는 신념의 힘이 어마 어마하다. 이래서 운동선수들이 큰 대회를 앞두고 마인드 세팅을 한다고 하는 거겠지.


사실 나는 겉모습의 힘을 더욱 믿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이유가 했던 말처럼 나는 나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무얼 해도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는 내 성격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관계에서 거리를 두기도 했고, 일을 할 때 차갑도록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movie_image.jpg 뷰티 인사이드 ⓒ네이버 영화


나는 이 영화를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보고 나서 아무리 그래도 내면이 겉 거죽보다 더 중요할까 생각했더랬다. 보이는 것 물론 중요하다. 한 살 어렸을 때, 한 살 더 어렸을 때, 아니 사실 지금도 이준기에 빠져있는 걸 보면 지금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도, 그 사람의 내면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좋아지는 사람. 한마디로 매력 있는 사람. 겉면만큼이나 내면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1905년에 벡 아저씨는 어떻게 알았을까. 나도 이제 그런 내면의 힘을 더욱 믿기로 했다.


겉 가죽만큼이나 속 가죽도 단단히 동여매고, 가꾸고, 채우고자 한다.

keyword
이전 08화관계에서의 무의식 습관